1부. 직장인이 뭐 어때서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런 말로 나를 표현하는 게 익숙한 시기가 있었다. 굳이 하나하나 설명하자니 귀찮기도 하고, 사실 별다를게 없이 살아왔다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기도 하다. 어쩌면 말로만 그렇고 나 정도면 그래도 평균보다는 조금은 낫지라고 생각하면서 자그마한 위안을 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봤자 앙증맞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지만.
그래서 평범의 기준이 뭔데?라고 묻는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니 간단하게 내 생각을 말해본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아주 당연스럽게 사는 게 평범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이 나온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듯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정말 물과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도덕경은 인생의 문제를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물이라는 것은 세면대의 덜 잠긴 수도꼭지 때문에 그냥 뚝뚝 떨어져서 하수구로 흘러내려가는 그런 종류의 물이었다. 낭비되듯 흘러가지만 누구 하나 잠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관심 하나 받지 못하고 내팽개쳐져 있는 그런 인생 말이다. 특별히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더니 어째 마흔까지 쾌속선을 타고 넘어와버렸다. 이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단순히 빨리 흘러오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아주 표본이 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면 대부분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정석적인 루트를 밟으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대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에 들어가고, 서른 정도 되면 결혼을 하고,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운다는 공략집에나 나올 법한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지키면서 살아왔다. 덕분에 모든 것을 제때(?) 해낸 매우 우수한(?) 보통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평범한 게 나쁘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평범하다는 것은 그래도 적당히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정도는 되는 거니까. 그래도 평범함 속에서도 조금은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뭐든 한 번에 어찌어찌 됐기 때문이다. 대학도 재수 없이, 아니 재수를 하지 않고 들어갔고, 취업도 한 번에 내가 원하던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소서도 내가 가고 싶었던 2군데만 제출해서 되었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이었고, 사원증은 하나의 전리품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웃긴 일이지만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나름의 자부심이 생겨서 좋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되는 게 아닐까? 라며 나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적당히 잘 살아가고 있잖아”라고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니 가슴속에서는 뭔가 좀 찝찝한 마음 한 덩어리가 남는다. 나 정말 잘 살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일단 연봉이 기대와는 달리 아기자기했고, 누구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집도 없고, 솔직히 차에 관심은 1도 없지만 차는 꽤나 구식이고…. 이런 것들을 다 따져 보다 보면 어째 내가 뭔가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맞네. 평범 그 잡채.
직장인이라는 것은 시간이 되면 내가 되어야 하는 그 무언가였다. 그런 교육을 아주 철저하게 받아왔으니까 직장인을 동경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입사하기 전에는 너무 거대하게 보이던 존재였는데 정작 내가 직장인이 되니까 별로 대단하지도 않더라. 내 눈에는 반짝반짝하던 그 이미지도 하루이틀이지 눈칫밥을 먹으며 시도 때도 없이 야근을 하다 보면 나 역시도 맥없는 동태눈이 되어서 지하철로 퇴근한다. 다들 지친 모습인 것 보니 또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 위안을 삼아야 할지 잠깐 생각해 보다가 그것마저 귀찮아서 다시 모바일 게임이나 실행시킨다.
‘쉬자. 피곤하다.’
오늘도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끝이 났다. 무사히 잘 마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