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언젠가 퇴준생 (퇴사 준비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이건 또 무슨 소리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니 무슨. 그렇게 힘들게 취업을 준비해서 입사를 했는데 바로 이어서 퇴사를 준비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취업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관문 중의 하나였고, 한번 정한 직장에서 평생을 다니는 것이 미학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이직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퇴사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일찌감치 준비를 하겠다는 이런 단어를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은 아무래도 MBTI의 J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퇴사를 위한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을 먼저 깨달은 그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그 사람도 지금의 직업이 자신이 원하던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여러분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단어의 어감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주변에 “퇴사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한 두 명은 있지 않는가. 투정 부리는 아이 같은 모습이기도 하고, 그런 말을 들을 때 애써 눌러둔 퇴사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서 일지도 모르겠다. 봉인 해제!
회사를 다니다 보면 매일 일은 쏟아져 나오고 어째 내가 처리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많을 때도 있다. 당연스러운 야근을 하고 지하철과 버스에서 온몸이 눌려가며 겨우 도착한 집에서는 일단 누워야만 한다. “아아 피곤하다”라는 혼잣말을 내뱉고 나면 보상으로 유튜브나 웹툰, 게임을 나에게 선물한다. 잠시라도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그 마음. 일도 싫은데 야근까지 하니 짜증도 나고, 퇴사를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고 귀찮기만 하니 일단 좀 쉬고 싶다. 내일 생각하자라는 다짐과 함께.
나의 과거를 돌아보니 퇴준생은 매우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무언가를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라는 건데 이렇게 보면 또 건설적인 방향이기도 하다. 회사 입장에서야 딴마음 품고 있는 사람이겠지만 그들은 꿈을 꾸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퇴사하는 사람들을 슬쩍 보면 공통점이 있다. 매번 퇴사하겠다며 투덜거리는 사람은 끝끝내 못 나간다. 반면에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즐겁게 다니는 것 같은 사람이 오히려 빨리 더 좋은 조건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그들이 그렇게 즐길 수 있었던 비결은 태생 자체가 인싸였을 수도 있지만 퇴사를 위한 준비를 이미 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자신의 미래가 마냥 어둡게만 느끼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좀 애매한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미래가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미래가 불안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회사 업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마음먹은 것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고작 시작하는데 11년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다는 원대한 꿈을 그리며 부동산 투자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이게 알면 알수록 내 생각과는 달랐다. 단순히 내가 잘한다고 막 벌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었고, 시장의 흐름도 있는 것이기에 최소 10년은 해야 뭐라도 될 것 같았다. 그 말은 내가 10년은 열심히 지금처럼 회사에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다. 지금처럼 막막한 삶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퇴사를 위해 공부하고 실력이 쌓인 후 성과를 내려면 10년을 열심히 해야 하니 결국 나는 10년 동안은 절대 퇴사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러다가 정년 퇴임을 할 것만 같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퇴사를 너무 하고 싶고, 나름대로 준비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준생은 아니었다. 퇴사 이후의 삶을 그저 준비했을 뿐이지.
그런데 내가 퇴사라니..! 이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