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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이 Oct 15. 2024

인사평가 : 조용하면 호구, 떠들면 찍힘

1부. 직장인이 뭐 어때서

회사 생활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나에 대한 평가였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프로의 일이다.’라고 평가 시스템을 멋지게 포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과연 그 평가가 얼마나 공정할까? 객관적인 지표를 근거로 AI가 값을 주는 형식도 아니기에 너무나 주관적인 사심과 인맥이 포함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부분이었다. 상사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절대자가 되는 이유는 이런 인사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니 야근을 안 할 수가 있나.  


이런 인사평가에는 의외로 중요한 부분이 숨겨져 있었다. 조직 내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라는 것이다. 단순 상대평가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실 당연한 경쟁이니 제외해도 좋을 것 같다. 진급대상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꽤나 크게 작용하게 된다. 우리 파트에는 왜 이렇게 진급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군대에서도 꼬인 군번(후임이 1년 뒤에 들어오게 되었다)이었는데 이런 쪽의 운은 참 없는 것 같다. 영어 점수를 일부러 따지 않으면서 진급을 하지 않고 매년 좋은 고과점수를 챙겨가던 선임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니 다른 선배들도 진급대상자가 되면서 결국 신입사원들은 바닥을 찍어야만 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고과를 챙겨주기 위해 파트장은 나를 가장 바닥으로 깔았고, 그다음에는 내 진급에 문제가 생기니 최고점을 주었다. 나름 챙겨주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신입 중에서 제일 못했으니 그랬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분야가 합쳐져 있던 파트였기 때문에 비율을 맞춰서 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열심히 하든 열심히 하지 않든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을 찍었다는 허무함에 힘이 빠져서 일을 덜 했을 때 S를 받았으니까. 최하점과 최고점을 연속으로 받았던 것 때문에 인사과에서 나에게 물어보더라.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내 평가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것이 비결이 아닐까 싶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렇게 나는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었다. 진급대상자가 아니니 A 이상을 받을 수 없었고, 평균치로 계산을 해버리니 최하점을 받았던 기록이 발목을 잡았다. 창피하고도 불쾌했다. 대상자일 뿐이고 안 나가도 된다는 말에 더 짜증이 났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술도 못 마시는데 그날은 취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선배와 단 둘이서 소주를 마셨다기보다는 몸에 들이부으면서 애써 상처를 소독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따끔하다 따끔해. 파트장을 욕해주시는 말은 고마웠지만 이미 흔들려버린 나의 세상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연차 한번 쓸 때도 눈치 보느라 1달 전부터 끙끙거렸던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회사는 회사일 뿐이고,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머리로 알고 있지만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 이후로 그래도 좋은 선배들과 좋은 기회들을 만나서 적당히 성장하며 적당히 직원으로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올라오는 불안감이 생겼다.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마치 내 인생이 이렇게 지속되다가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지루하다 지루해.


우울감은 계속해서 나를 집어삼켰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사내 심리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봤지만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그때 우연히 봤던 방송에서 만화가이자 방송인인 기안84가 방아머리 해수욕장에 걸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나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작정 김포에서 안산 방아머리까지 이틀을 꼬박 걸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탓에 발이 다 찢어져서 질질 끌고 다녔고,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스마트폰 지도에만 의지하며 걸었다. 떠날 때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슬퍼할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덕분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죽는 것보다는 열심히 사는 게 덜 힘들 테니까.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직장 생활이 흔들리게 되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로 갈 생각이 1도 없었던 터라 갑작스럽게 이직을 준비하면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평생직장이라는 것을 생각을 하던 나는 상당히 고지식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냥 새로운 도전을 해볼 생각이 없는 핑계 많은 패배자일 뿐이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그래도 업계에서는 알만한 외국계기업으로 옮길 수 있었다. 내 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추천의 힘이 컸다. 인맥 덕분이라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줬는데 그들에게 창피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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