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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이 Oct 18. 2024

중고신입의 탄생

1부. 직장인이 뭐 어때서

‘남들은 다들 이직을 잘만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이직 한번 한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니 별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다만, 설령 무너져도 출근해야 하니까 대단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이직이 두려웠던 이유는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잘 모르겠으니까. 주변에서 이직하면 다들 불만 사항을 토해내는 것에 가스라이팅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예전 회사에는 이렇고 저렇고 해서 좋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 

예전 회사가 힘들었던 것을 잊을 만큼 지금 회사가 별로인 것인지, 그냥 여유가 생긴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이직을 끝끝내 못했을 테지만, 회사 상황이 어려워져서 대규모 전배가 시작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나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물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물가에 처음 들어가는 아이처럼 준비운동도 하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 들어가서 부모의 케어도 받는 안정감이 있으면 좋겠다만 갑자기 벌어지는 대혼란의 시기에는 그런 배려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팀장님의 마지막 말을 정리해 보자면 이런 것이었다. “각.자.도.생!!  여러분 알아서 살아남으세요.” 


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직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지만 이직과 더불어 이사까지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일은 같은 산업군에 있었지만 업무 자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적응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이 여기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나름 경력직이라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만 일을 신입처럼 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 와중에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전 직장에는 수많은 입사 동기가 있어서 서로 도와가면서 어떻게든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이젠 내 상황과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저 혼자 속이 썩어가는 것을 바라만 봤다. 잘 적응하라면서 붙여준 멘토는 부장님이었고, 뭘 물어보면 ‘그것도 몰라?’라며 그냥 가버리는데 어떻게 더 물어볼 수 있겠는가. 심지어 온갖 회의로 매일 바쁘신데 말 한번 꺼낼 타이밍 잡기도 쉽지 않았다. 


일의 성격이 너무 달라져 버렸다. 아주 작은 말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류의 일이라서 메일을 한번 쓸 때에 2~3번의 검사를 받고 나가야 했다. 숙제 검사를 받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한 번은 메일의 폰트와 글자 사이즈를 기본 설정으로 썼다가 혼이 났다. 꼭 반영해야 하는 기준이 있다면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일은 부딪히면서 배운다고 하지만 그 부딪힘이 점점 버거워졌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져서 자신감이 남아나질 않았으니까. 설마 길들이기를 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점점 웃을 일은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 내 이야기를 할 이유도 없었고,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다들 바쁜 걸까, 내가 겉도는 걸까. 나와 팀원들은 우주의 행성처럼 주변을 맴돌 뿐 다가가지 못하는 그런 관계일지도.


특히 세미나를 준비할 때의 스트레스는 정말 최악이었다. 준비 시간은 짧은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서버에 있는 문서를 모두 뒤져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혼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삽질을 하는 기분이랄까. 모르면 물어보라고 했지만, 정작 물어보면 다들 바쁘니 물어보지 말고 직접 알아내라고 하고, 혼자 끙끙대고 있으면 왜 안 물어봤냐고 혼이 났다. 어쩌라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다른 팀원들은 모두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나만 모르는 내용을 발표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문서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또 던진다. 자신들의 메일함에만 있는 그 답을 꽁꽁 숨긴 채 왜 그러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번 도살장에 끌려가는 한 마리의 흑우였다. 세미나가 끝나면 숙제를 잔뜩 받고, 다음 세미나가 잡혀 버리니 의욕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해도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종종 찾아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답이 있지는 않았다. 내가 해온 게 이 분야의 일 밖에 없는데, 이건 밖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계속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또 이상한 사람이기도 한가 보다. 내가 이야기하는 생각이나 관점이 남들과 다른 독특한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30 후반에 MZ냐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젊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너에겐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그래서 말을 더 아낀다. 괜히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데 서로 간에 더 불편해진다. 이곳에서 나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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