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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16. 2021

음성이 통보되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정보육의 어려움


 오전 7시 15분, 어제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문자로 통보되었다. 아이와 나 모두 음성이다. 안도감을 느끼며 결과 통보의 신속함에 마음속으로 엄지를 치켜드는 찰나, 동시에 익숙한 전투의 서막이 올랐음을 깨달았다.


오늘도 학생 중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며 25일까지 비대면 수업이 확실시되었다. 이미 감기로 인해 2주 전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있지 않은 둘째와 함께 첫째까지 집에서 열흘간 뒹굴거려야 한다. 가슴이 쿵쾅대고 머릿속이 어지럽다. 삼시세끼 뭘 먹이나. 공교롭게도 아이들 목욕 담당인 남편은 이번 주 내내 출장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쉽게 날카로워지려는 신경을 잘 다독여야 한다. 그나마 얼마 전 식기세척기를 들인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아이들을 깨워 사과와 고구마로 간단히 아침을 먹이고, 첫째의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었다. 누나가 수업을 들으니 둘째도 옆에서 구경을 하다가 이내 지루했는지 블록을 갖고 논다. 다 만든 것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들고 오다가 떨어트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때부터 떼가 시작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구르고 화를 낸다. 누나 수업 중이니까 조용히 하자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한편 첫째는 수업에 도통 집중하지 못한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딴짓만 한다. 옆에서 몇 번 경고를 주다가 참다못해 쉬는 시간에 야단을 쳤다. 야단을 치면서도 어릴 때 나를 보는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첫째의 수업이 끝나고 숙제를 봐주는데, 둘째가 책을 읽어 달라 떼를 쓴다. “누나 꺼 먼저 하고 읽어줄게~”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으~응!!!!”하면서 책을 들이밀고 자기 것 먼저 해달라고 떼를 쓴다.

정신없이 숙제를 봐주고 책을 읽어주고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된다. 점심을 차리고 밥을 먹이고 내가 밥을 먹을라치면 아이 둘이 과격하게 싸우거나 응가를 한다. 제발 밥 좀 여유 있게 먹고 싶다.

밥을 다 먹고 아이들이 노는 동안 청소와 빨래를 한다. 같이 놀자는 둘째의 말에 인형놀이도 했다가 책도 읽어주고, 비행기를 태워주며 논다. 그러다 보면 집은 어느새 난장판이 되어있다. 아이들이게 정리를 하자고 해도 소용이 없다. 끝내는 “10분 안에 안치우면 큰 비닐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협박을 해야 치우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을 씻길 시간이 다가왔다. 아토피가 심한 손에 물이 닿으면 찢어지고 갈라져 피가 난다. 하지만 목욕 담당 남편이 없으니 하는 수 없다. 니트릴 장갑을 껴 끝까지 쭉 올린 다음 손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고무줄을 팔에 껴 입구 쪽을 꼼꼼하게 막는다. 그럼 씻길 준비 완료!

씻기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재우다 보면,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없이 뭔가 바쁘게 지냈는데 뭘 했는지 모를 하루가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가슴속에 얕게 묻혀있던 우울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면서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외친다.


사실 아이 둘과 집에서 사투를 벌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12월 첫째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이 방학을 하고 다음 해 코로나가 터지면서 겨울방학이 다음 해 5월까지 이어졌다. 그 후 간헐적으로 유치원을 가다가 11월쯤 되어서는 지금껏 등원한 횟수를 따져보니 두 달이 채 안되어서 이럴 바에는 퇴소를 하자 싶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퇴소를 하고, 다음 해 3월 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해서 잘 다니다가 여름방학 2주를 남기고 전국이 4단계가 되면서 전면 비대면 수업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아주 길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학교에서 코로나가 터지면서 열흘간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번보다는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져 상황이 좀 더 나아졌지만, 둘째의 방해공작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수업 중 아이의 딴짓에도 변함이 없다. 차라리 내 눈에 안 보이는 게 낫지.


처음 겪는 일은 멋모르고 지나가는데, 경험해본 일은 그렇지 않다. 두려운 일은 더 두렵고, 힘든 일도 더 힘들게 느껴진다.

심적 피로함에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주에 하루만 휴가 내면 안 돼?"

"안돼. 바빠."

나도 바쁘다! 나도 바빠!


학교에서 코로나가 터지면서 현재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가정이 많다. 대략 80여 가정에 달하지 않을까 추정된다. 열흘 동안 꼼짝없이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돌보는 가족이 다 함께 힘을 내길 바란다. 오늘 벌써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아흐레 남았다.

26일에 모두 밝은 얼굴로 등교할 수 있기를. 내 얼굴도 밝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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