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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19. 2021

산타클로스는 진짜 있을까


 크리스마스가 한 달 하고도 일주일 남은 지금, 우리 가족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을 ‘선물’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서부터 큰아이는 ‘겨울’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겨울은 언제 와?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고.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도 받고.” 

유난히 겨울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아이는 겨울은 언제 오냐는 질문을 잊을만하면 해댔다.




네가 바란다고 빨리 오는 게 아니란다.

안타까운 마음에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 겨울을 기다리는 동안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 써볼까? 선물 뭐 받고 싶은지 생각해서 써보는 거야.

- 음..... 뭘 받으면 좋을까아....


아이는 퍽 진지하게 고민했다. 행복한 고민에 사로잡혀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다가 “아! 모르겠어!”하며 미소를 띤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그런 아이를 보며 괜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그런데 OO이 착한 일은 했어?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으려면 착한 일 해야 해.

- 응. 나 착한 일 했어. 아까 장난감 정리도 했고, 동생도 잘 돌봤잖아. 이거 착한 일 맞지, 엄마?

- 아! 그러네?! 착한 일 많이 했다~

- 아... 그런데 편지에 뭐라고 쓰지?

-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고 싶은 선물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 엄마, 산타할아버지 진짜 있는 거 맞아?

- 응? 당연하지. 왜?

- 오늘 학원에서 2학년 언니가 산타할아버지 없다고 했어.

- 아닌데. 진짜 있는데. 그 언니가 잘 못 안거야.

- 언니가 옛날에 밤에 언니 엄마가 선물 포장하는 거 봤대.


순간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아~ 그거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놓고 간 거 언니네 엄마가 대신 포장하신걸 거야. 산타할아버지가 바빠서 포장을 못하면 그럴 수도 있어.”

아이는 미심쩍어하는 얼굴로 미소 지은 채 웃고 있었지만, 나는 진실의 눈빛을 마구 쏱아내보였다.




사실 아이가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의심을 갖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재작년 아이가 6살 때 유치원에서 산타클로스의 존재 여부에 대해 아이들 사이에서 설전이 있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는 있다’와 ‘산타클로스는 없다’라는 두 편으로 나뉘었는데, 아이는 전자에 속했다.

- 엄마, OO는 산타할아버지가 없대.

- 응? 무슨 소리야? 산타할아버지 있는데.

- OO이가 산타할아버지 없고, 사실 엄마 아빠가 선물 주는 거랬어.

- 그럴 리가. 산타할아버지 핀란드 산타클로스 마을에 계신 거 책에서 봤잖아.

- 나도 알아~ 그런데 OO 이는 모르나 봐.


그 당시에는 아이가 정말로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것 같았는데, 올해는 뭐랄까 '진짜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알아버린 눈빛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모호했다. 


아이가 약간 의심을 하고 있다고 해도 엄마의 마음으로는 올해까지만이라도 산타클로스를 믿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매년 하던 대로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에 아이의 방에 쿠키와 우유를 놓고 자도록 할 계획이다. 아이가 산타할아버지가 오면 드시라고 작은 간식들을 매년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깊이 잠들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선물을 꺼내어 아이의 머리맡에 두고는, 조심스레 간식을 들고 나와 식탁에 앉아 먹는 시간이 행복하다. 아이가 더 이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간식도 없어질까 벌써 서운하다. 어쩌면 아이가 깊이 잠든 밤 선물을 전해주고난 후에 간식을 먹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도 6~7살쯤 유치원에 온 산타분장을 한 선생님을 보고는 산타할아버지는 없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던 거 같다. 그리고 8살 겨울, 산타할아버지를 진짜 보고 싶어서 밤에 자는척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내 머리맡에 부스럭 거리며 선물을 놓아두는 엄마를 실눈을 뜨고 지켜보면서 진짜 산타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두는 사람이 산타클로스가 아니고 엄마 아빠였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엄마 아빠가 산타클로스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얀 수염에 불룩 튀어나온 배, 그리고 빨간 옷을 입지 않았더라도, 나의 행복을 빌며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두고 가는 사람이 산타클로스가 아니면 뭐겠는가.  


무언가를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게 어린 시절 말고 또 있을까. 나이가 들면 점점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사라져 간다. 그러니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의심 하나 없이 믿을 수 있을 때 마음껏 믿었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이 다가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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