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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20. 2021

처음 보는 이와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

웃음은 전염된다


 길을 걷다가 혹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면 반사적으로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래전이라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억지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아! 나와 눈이 마주치신 분. 안녕하세요. 정말 반가워요.’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쳤다가 내가 웃으면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인양 똑같이 따라 웃었다. 짧게 2~3초 정도 서로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는 각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선을 돌린다. 이제와 생각하니 미소를 나누는 것으로 서로 가벼운 인사말을 대신한 것 같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아! 오해하지 마시라. 이건 나의 어릴 적 이야기다. 요즘 이런다면 아마 '정신이 이상한 여자'라며 신고를 당하지 않을까.




웃음이 많은 아이였던 나는 작은 것에도 웃던 아이였다. 기쁜 일은 물론이거니와 정말 기억도 나지 않을 사소한 것들에도 깔깔거리며 웃었고, 어색하거나 곤란한 상황에서도 수줍은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선생님께 이런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뭐가 그렇게 즐겁니. 너무 웃으면 남학생들이 자기 좋아하는지 알고 오해할 수도 있어. 그러니 그만 웃어.”

친구들에게 자주 듣던 말로는 "나사 빠졌어?", "약 먹을 시간 지났구나." 등이 있다.

그런데 위의 말을 하는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결국은 저런 말을 하며 같이 웃었다. 웃음은 전염이 된다.




중학생이 된 뒤로는 더는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웃지 않았다. 무슨 계기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었고,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다.


학교에서 ‘사회를 이롭게 하는 캠페인’을 주제로 조별 발표가 있었다. 어떤 주제의 캠페인을 만들까 고민하며 회의를 하다가,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서로 마주 웃어주고 기분이 좋아졌던 게 떠올랐다.

“스마일 캠페인 어때?”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활짝 미소 짓는다. 그러면 상대방도 웃는다. 웃음은 전염성이 있으니, 삭막한 사회에 미소가 퍼져나가 따뜻한 사회가 될 거다. 대략 이런 설명을 했더니, 친구들 반응이 이상하다.

"그게 뭐야?", “왜 모르는 사람한테 웃어줘?”, “이상한데?”

“왜~ 어릴 때 모르는 사람 눈 마주치면 웃지 않았어?”

“아니. 전혀.”

“아, 진짜 나만 그런 거였어? 그럴 리가.”

친구들은 어이없어했고, 나는 당황했다. 진짜 아무도 그런 적이 없다니.

당시 살짝 충격적이었던 그 순간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어릴 적 내가 한 행동이 흔한 행동은 아니었구나 느끼긴 한다. 두 아이 모두 잘 웃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미소를 짓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음은 전염성이 강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전염될 수 있다. 그렇기에 주변인들에게 미소를 아끼지 말자. 카드빚 때문에 돈을 아끼고, 지구를 위해 물을 아낄지언정, 미소는 과하게 소비해도 문제없으니 쓸 수 있는 만큼 펑펑 써보자. 석유 재벌 만수르가 돈 쓰는 것 부럽지 않게, 내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게 웃음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나이가 들어 세상의 때가 묻어서인지 시대가 각박하게 변해서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표정이 점점 무표정으로 변해가는 듯하다. 다양했던 표정들이 하나씩 줄어들어 결국 표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사이버 세상이 거대해지고, 코로나로 인해 얼굴의 반은 마스크로 가리고 다니니 더욱 그리 느껴지는걸 수도 있다.

이럴 때 웃어본다면, 내 웃음을 보고 누군가 따라 웃게 되고, 그 웃음을 보고 또 다른 이가 웃게 될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지 않은가. 별 노력 없이 힘들이지 않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직 누군가에게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용기 나지 않는다면, 거울을 보고 웃어 보길 권한다. 진심으로 웃겨서 웃는 게 아니더라도, 거울에 비친 미소 짓는 내 모습에 내가 '진짜로' 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나 자신은 기분 좋게 만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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