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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21. 2021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시간 낭비냐고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에너지가 소비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흐름이 바뀌어 바닥난 에너지가 채워집니다. 물론 사람마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에게는 아무도 없는 혼자인 공간에서 무념무상인 상태로 있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주말마다 소파 혹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무념무상의 시간이 가능했지만, 아이를 낳고 난 후로는 불가능합니다. 어쩌다 거실 바닥에 잠깐이라도 누워있을라치면 아이들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보아도 장난감을 가져와 입속에 넣으며 약이라고 먹으라 합니다. 먹는 척을 할 때까지 계속 입속에 밀어 넣으니, 꿀꺽 먹는 척을 하고는 일어나 앉습니다. 목에 팔을 꽉 두르고 등에 매달리는 아이에게 목젖이 눌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옵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에 쉬면 되지 않느냐는 남편의 말에는 코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첫째를 등교시키고,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려는 둘째와 씨름을 하다가 겨우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일이 시작됩니다.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난 후 겨우 밥을 먹고 설거지를 바쁘게 마치면 첫째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입니다. 그 후부터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며 저녁까지 바쁘게 오갑니다. 집에 오면 저녁을 먹이고, 첫째의 공부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다가 아이들을 재우려고 같이 누우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중 내가 가질 수 있는 무념무상의 시간은 없습니다.


아! 잠시 있기는 합니다. 화장실에 있을 때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엔 가끔 화장실로 도망칠 때가 있습니다. 길면 20분 정도 있을 수 있는데, 이상하게 그 사이 아이들이 울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아이끼리 다투거나, 아빠와 아이들이 다투거나 합니다. 누군가 크게 울면 잠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깨지고 맙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집안일과 육아에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어 남들보다 더 힘들게 느끼는 걸까. 다른 이들은 야무지게 잘 해내는 걸,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걸까. 어느 것이든 조금씩 영향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게 엄마 역할을 못 한다고 비난을 받거나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맛있는 요리를 잘 해내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전업주부로서 살림을 잘 해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 주는 압박감이 클 뿐입니다.


사실, 이 미안함과 압박의 감정은 작년부터 스멀스멀 몸집을 불리고 있습니다. 작년엔 아이 둘이 거의 집에 있었고, 올해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감정을 풀어낼 시간이 필요한데, 나에게는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나아질까요.


어쩌면 어린아이가 있는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타령을 하는 게 이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기적이더라도 내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충전되어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 몇 시간이라도 혼자 보낼 시간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엄마 없이 아빠와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어도,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야지 혼자만 시간을 보내냐는 남편의 투덜거림도 애써 무시하며, 잠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연습해 보려고 합니다.


지친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잠깐의 휴식으로 긴 시간을 건강히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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