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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Jul 17. 2022

습관화된 조급증


 오전 8시 30분. 집 앞 정류장에서 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여섯 정거장을 가야 한다. 버스 배차가 짧은 편인데도,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꽤 몰려있다. 출근 피크타임을 살짝 벗어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는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을 싣고 온다. 치익~ 전기밥솥의 김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면 앞뒤 문 모두 사람으로 가득 차 들어갈 공간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버스를 놓치면 또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기에 사람들은 앞뒤 문으로 밀고 들어간다. 


역에 가까워질수록 내리는 사람은 몇 없는데, 타는 사람은 그 배가 훨씬 넘는다. 더는 탈 수 없을 것 같음에도 신기하게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들어온다. 이 정도면 내 의지로 서 있는 게 아니다. 다리에 힘을 풀어도 바닥에 주저앉지 않을 것만 같다.

어서 역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 싶다. 괜히 차창 밖을 살피며, 내가 버스보다 앞서 가는 버스를 보면 '왜 버스는 느린 거야!'라며 '빨리 가라! 빨리 가!'라고 들릴 리 없는 아우성을 마음속으로 외친다.


역까지 세정거장 남겨두었을 때, 버스의 문이 열리고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의 아버지가 탔다. 이 시간에 버스 안에서 초등학생을 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에다, 콩나물시루 같은 공간에 아이가 탄다는 게 안타까워 시선이 갔다. 키가 작은 아이가 어른들 틈에서 답답하다 불평할 만도 한데, 아이는 뭐가 신나는지 웃는 얼굴로 아빠 앞에 서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드디어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양쪽 문으로 썰물같이 빠져나간다. 역을 향해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나도 별생각 없이 앞만 보고 빠르게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역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서있다가, 걸어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걸을까 말까 고민했다. 아마 운동화를 신었으면 바로 걸어갔을 텐데, 그날은 굽이 있는 구두라 망설였던 것이다. 잠시간의 고민을 끝내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려 한 발을 뗀 순간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빠. 사람들이 왜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가요?

- 빨리 가야 하나 봐.

- 왜요?

- 바쁘니까?     


어? 난 안 바쁜데. 그러게. 내가 왜 걸어가려 했지? 구두 신고 내려가면 힘든데. 심지어 서둘러 출발해 약속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바쁘게 움직였던 걸까.    

 

급한 일도 없는데,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가려는 층을 누르고 닫기 버튼부터 냅다 누른다. 길을 걸을 때는 주위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빠르게 걷는다. 몇 초 되지 않는 인터넷 로딩 시간을 견딜 수 없어 다른 일을 동시에 하려 든다. 나는 왜 시간에 쫓기고 있는 걸까.


여유가 있는데도 누리지 못하면 불행하다.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습관화된 조급증으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바쁘지 않은데 바쁜 척을 하느라 피곤하다. 


느긋하게 여유를 만끽하지는 못해도 쓸데없이 정신없음을 반복해서 느끼지는 말자고 되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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