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저녁이면 남편과 둘이 마주 앉아 으레 맥주캔을 딴다. 캔을 따며 울리는 시원한 소리는 삶의 낙 중 하나가 되었다.
맥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20대 얼토당토않은 객기로 맥주가 무슨 술이냐며 소주만 먹어대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술 같지 않은 액체를 애정하게 되었다. 적당히 취하지 않으면서 기분 좋을 수 있는 도수.
사실 맥주 맛을 전문적으로 알고 먹는 건 아니다. 쌉싸름한 맛을 더 선호하고, 온도가 차가울수록 좋다는 정도. 맥주는 캔을 따자마자 꿀꺽꿀꺽 들이키는 첫 모금이 가장 맛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 뱃속을 시원하게 해 주고, 머릿속까지 울리게 하는 차가움이 좋다.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맥주를 찾게 된다. 나는 왜 맥주를 먹을까. 몇 가지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맥주와 함께 먹는 안주가 좋다. 맥주와 먹는 음식은 다 맛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맥주가 당긴다.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김치랑 먹는 게 맛있어졌다. 예전에 나이 든 아저씨들이 반주하거나 냉장고에서 대충 꺼낸 반찬과 술을 먹는 모습을 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 입맛은 착실히 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약간의 기분 좋은 흥분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웃고 떠드는 순간이, 목소리를 높여도 이상할 게 없는 공간이 좋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도 모르게 쓰고 있던 가면을 스르륵 내려버리는 순간일 수도 있고(만나면 마음이 편한 사람들과의 술자리일 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어찌 되었든 분위기가 평소보다 말랑해지는 건 확실하다.
세 번째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이다. 물론 술을 먹지 않고도 대화할 수 있겠지만, 술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면 대화 속에 언뜻언뜻 진솔함이 내비칠 수 있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진다. 중요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깔깔거리며 할 수 있고,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도 사실은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기도 한다.
결국 나는 맥주를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었다. 맥주와 함께 함으로써 얻게 되는 상황들을 좋아한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캔에 맺힌 물방울만큼 맥주의 차가움은 식어가고 미지근한 맥주를 들이켜게 되지만, 상관없다. 맥주를 사이에 두고 나와 네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