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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29. 2021

인생 노래

없는 게 메리트니 매일이 Happy day


 야근은 필수고 철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시절, 점심을 먹고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경할 여유도 없이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촉박한 프로젝트로 인해 몇 시간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봄날의 나른한 오후에 몰려오는 춘곤증을 버텨내기란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잠을 쫓기 위해 못 마시는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지만 역부족이었다. 신나는 음악이라도 들으면 잠이 달아날 것 같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골랐다. 자우림의 팬인 나는 당시 신곡이었던 자우림의 Happy day를 선택했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자우림의 음악은 자동으로 어깨춤을 추게 했지만 회사에서 그럴 수는 없으니, 고개와 발만 소심하게 까닥였다. 그러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인생은 같은 결말을 준비해 놓았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나, 우리는 모두 사라지리.
가련한 심장도 언젠가는 영원한 휴식을 맞으리.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의 매일이 부디 HAPPY HAPPY DAY.
OH, HAPPY HAPPY DAY!
어느 누구에게라도 인생은 같은 결말을 준비해 놓았지.
빠르던 늦던 언젠가는 우리들은 모두 죽음을 맞으리.
어디서 와 어디로 가나, 우리는 모두 사라지리.
그러니 허공에서 빛나는 동안만은 부디 HAPPY HAPPY DAY.

- 자우림  HAPPY DAY 中 -     


당시 새벽 2~3시쯤 퇴근을 할 때면 택시를 이용하곤 했는데, 그 시간의 택시는 총알택시와 같이 매우 빠르고 위협적으로 달렸다. 기사님께 천천히 안전운전을 부탁하고 싶었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시간은 새벽이었고, 나 혼자 먼 거리를 타고 가야 했기에 괜한 두려움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처음 몇 번은 빠르게 달리는 속도에 사고가 날까 무서웠지만, 차츰 익숙해지자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대로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병원에 입원하면 잠깐 쉴 수 있겠지?’

매번 이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가, 어느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 몸이 다치는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끔찍하고 무서웠고, 그 정도로 일을 하기 싫으면 그만 두면 되는 것을 사고가 나길 바라다니 굉장히 멍청했다. 이 상태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HAPPY DAY를 듣게 된 거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게 되어 있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에 행복해야 한다. 불꽃놀이 같은 나의 인생이 언제 꺼질지 모르니, 빛나는 동안에 최대한 즐겨야 한다.


그날 이 노래를 서른 번은 반복해 들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리고 미련 없이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내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버티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의 오랜 고민이 무색하게도 결심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이 노래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나 자신을 갉아먹으며 몸 안의 깊숙한 곳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렸을 거다. 속 안이 무너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안이 텅 비었을 때쯤 손쓸 틈 없이 모든 게 와르르 무너졌을 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이 나왔을 때, 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음악 하나로 이게 가능한가 싶어 의심스러웠지만. 16년 후 음악으로 중대한 결정을 쉽게 내리는 경험을 하고 난 후로 음악의 힘을 믿게 되었다. 


요즘은 옥상달빛의 ‘없는 게 메리트’를 듣고 있다. 최근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5년 후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이다. 그쯤이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내 일을 하고 싶을 텐데, 경력은 단절되었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예전에 하던 일은 하고 싶지 않으니 논외로 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고민의 끝에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자괴감이 몰려올 때쯤 이 음악을 듣는다.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 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 거야
나는 가진 게 없어 손해 볼 게 없다네 난
정말 괜찮아요 그리 슬프진 않아요
주머니 속에 용기를 꺼내보고
오늘도 웃는다 그래

- 옥상달빛  없는 게 메리트 中 -   


나는 없는 게 메리트다. 그러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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