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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30. 2021

요구르트 하나로 슬픔이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으아아아앙~!!!! 36개월 아이가 웁니다. 우는 것도 얼마나 열심인지 짧은 머리카락이 흠뻑 젖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목청껏 소리 지릅니다. 눈물은 어찌나 잘 나는지, 울고자 마음먹으면 눈물이 도르륵 흘러내리나 봅니다. 답답한 마음에 왜 우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발을 마구 구르며 불만을 표시합니다.


멈출 줄 모르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파져 오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두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아이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얘가 대체 왜 우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은 이유를 알고 있긴 하지만, 간혹 전혀 짐작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방법이 없습니다. 안아주고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어요.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우는 아이는 너무 울어 기침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여차하면 구토를 하기도 하고요. 몇 번 경험하다 보니 구토는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최후의 수단을 씁니다.


“우리 요구르트 먹을까?”


그러면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눈물을 뚝 그칩니다.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처럼 말이죠. 어른의 시선으로는 세상에 요구르트 하나로 목놓아 울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눈물을 그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 아이를 보니 전래동화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더군요. 완벽한 고증(?)이었습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 빨대를 꽂아 아이에게 내밉니다. 아이는 눈물 자국이 하얗게 말라붙은 눈가와 볼 근육을 움직여 활짝 웃으며 요구르트를 받아 들고는 거실에 있는 빈백으로 유유히 걸어갑니다. 작은 입을 모아 빨대를 쪽쪽 빨며 세상 행복해합니다. 빠른 속도로 원샷을 하고는 분리수거 통에 놓고 놀이를 하러 떠납니다. 비록 비닐을 놓는 곳에 플라스틱인 요구르트병을 놓아두긴 하지만, 분리수거를 한다는 자체로 기특합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아이가 왜 울었는가는 알아내지는 못합니다. 엉엉 울던 아이가 씩 웃으며 장난감을 갖고 놀러 가니, 그걸로 되었다 만족합니다.


집이 떠내려갈 듯이 울던 아이가 요구르트 하나로 금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는 어떠한가요?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슬플 것만 같은 상황에 요구르트 하나로 기분이 씻은 듯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슬픔에서 벗어나는 일이나 기쁨을 느끼는 일에 있어 얼마나 까다로워지는지 아이를 보며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이거니와 기쁨을 느끼는 건 웬만한 일로는 감흥이 없어졌습니다. 


분명 나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는데, 그 모습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어쩌면 세월의 옷을 덧입으며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옷을 너무 껴입어 이제는 벗을 수도 없는 상태이니 어린아이의 마음은 꺼내고 싶어도 꺼낼 수가 없겠네요. 아쉽지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생각은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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