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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31. 2021

게으름뱅이의 여행 준비


 여행 가기 전날입니다. 여행 일정은 물론 짐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게으름뱅이이기 때문일까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천하태평입니다. 부지런쟁이인 친정엄마와 동생은 이런 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여행 일주일 전부터 짐가방을 싸기 시작하거든요. 무슨 짐을 일주일 전부터 싸나 싶지만, 그런 사람이 있더군요.

 

여행 당일 아침입니다. 느긋하게 일어나 샤워를 하고, 창고에서 여행가방을 꺼내 짐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옷은 최소한으로 가져가고, 속옷과 세면도구, 수건과 로션을 가방 속에 대충 밀어 넣으면 준비 끝입니다. 혹시나 필요한 것이 생기면 여행지에서 마련하거나,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자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여행가방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피가 작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기면서 게으름뱅이 여행자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깁니다. 짐을 당일 아침에 싸는 점은 변함이 없는데, 짐의 부피가 굉장히 늘어난 것이 전과는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일단 아이들의 애착 인형과 베개, 이불을 챙겨야 합니다. 혹여나 깜빡하고 빠트렸다면 잠을 쉽게 자기는 글렀기에 마음을 내려놓고 해탈의 경지에 오를 마음가짐을 야 합니다. 안 그래도 잠자리가 바뀌어 잠들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잠들 때 항상 안고 자는 애착 물건까지 없다면, 그날 잠은 다 잔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여행 가방에 자리가 없더라도 이 물건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꾸역꾸역 밀어 넣어야 합니다.

여벌 옷과 속옷은 최대한 많이 챙깁니다. 음식을 먹거나 밖에서 활동을 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옷이 젖거나 더럽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득가득 담습니다.

밖에 음식을 안 먹을 경우도 많으니 약간의 마른반찬과 간식들을 챙깁니다. 김과 멸치볶음, 누룽지는 필수입니다.

희한하게 아이들은 여행지에서 간혹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체온계, 해열제, 연고, 밴드 등을 챙겨 넣습니다.

이렇게 챙기다 보면, 내 짐은 한 줌인데 아이들 짐은 24인치 캐리어 두 개에 한가득 채워지고도 넘쳐납니다.


짐을 싸느라 정신없이 동분서주하다 보면, 집에서 어서 빨리 헤어 나오고 싶습니다. 여차 저차 해서 드디어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탈출에 성공한 느낌이지만,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거대한 짐 덩어리들을 차 트렁크에 실으며 남편이 말합니다.

"이민 가니? 2박 3일 가는데 짐이 왜 이렇게 많아? 집에 안 오려고?"

내 짐이 아닙니다. 이건 모두 너의 아이들 짐이랍니다.


카시트에 아이들을 태우고 차를 출발시킵니다. 내가 좋아하는 록음악이 아닌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뮤지컬 음악을 틉니다. 어깨춤이 절로 춰지는 음악이 아니라 아쉽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나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여행가방의 부피도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합니다. 둘째가 8살이 되는 4년 후쯤에는 아주 간편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각자의 배낭에 최소한의 짐들만 챙겨 자유롭게 배낭여행을 하는 거로 말이죠. 그때는 나와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여행의 동반자가 될 수 있겠죠. 래의 여행 동반자에게 여행의 기쁨을 많이 알려줘야겠습니다. 그래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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