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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07. 2021

알레르기를 대하는 자세

예민함의 익숙함


 아주 작은 볶음용 멸치를 커다란 쟁반에 쏟는다.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도록 ‘매의 눈’을 장착하고 멸치 속에 섞여 있는 이물질을 차근차근 제거해 나간다. 이물질이란 멸치 크기의 작은 새우나 그의 껍데기, 혹은 말도 안 되게 작은 게나 주꾸미 모양의 생물, 그리고 정체불명의 작은 조각들을 말한다.


세계적인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심혈을 기울여 멸치 속에 섞인 이물질을 골라내고 있자니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이 잡아? 원숭이가 털 고르기 하는 것 같아.”


웃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에 집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숙인 고개에 목덜미가 아파져 온다.

     

멸치의 이물질을 골라내는 게 힘들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세상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멸치볶음만큼 쉬운 게 어디 있다고 쩔쩔매? 그리고 이물질 골라내는 것도 쟁반에 쫙 펴서 대충 한 번씩 훑으면 되지. 다 먹어도 되는 거야. 이상 없어.”


아... 하지만 나는 그냥 대충 먹지 못하겠다. 멸치가 아닌 다른 것들은 꼭 걸러 내야 한다. 




사실 이렇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아이가 돌이 지나 이유식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피부 상태가 나빠져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밀가루, 달걀, 견과류, 갑각류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먹을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실제로 아이는 아주 작은 양의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섭취해도 반응이 왔는데, 눈과 귀가 땡땡 붓고 식도까지 부어올라 위험했다.


그 후부터 먹는 것에 유독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했고, 외식을 하면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외부에 나갈 때는 아이가 먹는 것을 따로 챙기기도 했다. 예전보다 번거로운 일이 늘었지만, 나름 장점도 있었다. 성분표를 하도 봐서 이제는 웬만한 식품은 알레르기 유발 성분의 첨가 여부를 알 수 있다.

시중에 판매하는 된장, 고추장, 간장에 어김없이 밀가루가 들어갔을 줄 알았겠는가. 짜장과 카레에도 밀가루가 들어간다. 과자는 쌀이나 감자, 옥수수로 만든 과자만 가능하고, 빵은 글루텐프리라 하더라도 달걀이 들어가니 먹을 수가 없다.     



 

멸치 역시 마찬가지다. 새우나 게 같은 작은 갑각류가 섞여 있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고르고 골라내는 거다. 

하지만 이런 나를 보고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들이 있다. 가장 가깝게는 남편이 그러하다.

알레르기 체질인 나는 반응이 왔을 때의 고통을 안다. 하지만 남편에게 아무리 설명해줘 봤자 직접 고통을 느껴보지 못했으니 이해하지 못한다. '그거 조금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자꾸 조금씩 먹어 적응시켜야 한다'는 증명되지도 않은 발언들을 해댄다. 

처음엔 이런 반응에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니 말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랬을지도 모르고.  

   

8살이 된 아이는 다행히 달걀 알레르기는 사라졌고, 밀가루도 어느 정도 첨부된 것은 섭취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갑각류와 견과류는 위험하다. 7년 전에 비하면 매우 감사해야 할 상태이지만, 여전히 불편함은 있다. 이제 적응이 되어 그 불편함이 익숙해졌기에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느낄 뿐이다. 


학기 초에 양호실에 응급상황 시 투여할 수 있는 약물을 투여 방법과 함께 전달했다.

매달 말일이 되면 아이의 학교에서 다음 달의 급식 표가 나온다. 급식표를 두 부 출력하여 섭취 불가능한 메뉴에 표시하고, 아리송한 메뉴는 영양사 선생님과 통화하여 섭취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그리고 한 부는 집 냉장고에 붙이고, 나머지 한 부는 아이 편에 담임선생님께 전달한다. 

이 모든 게 처음엔 힘들었지만, 적응이 되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무엇보다 매일의 급식 메뉴를 꿰고 있으니, 주위 엄마들이 오늘의 급식 메뉴 이야기를 할 때면 브리핑을 할 수 있다. 

오늘의 급식 메뉴가 궁금한가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 다들 안타깝게 바라본다. 심지어 나의 친구는 “아이에게 병이 있어서 어떻게 하냐.”라고 말했고, 간혹 “불쌍해.”라고 말을 하는 아이의 친구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게 그들에게 말한다.

“별거 아니야. 단지 그 음식을 못 먹을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아이도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6살쯤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밀가루를 못 먹는 거야? 먹으면 왜 아픈 거야?"

"특별히 건강해서 그래. 밀가루는 몸에 안 좋거든. 그래서 건강한 몸이 거부하는 거야."

    

의사 선생님은 8살 전후로 하여 알레르기 증상이 없어지지 않으면 해당 물질에 대한 반응은 평생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이 아이가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알레르기 체질인 나 때문에 아이가 힘들구나 하는 자책도 했다. 내 수명을 깎아서라도 아이가 나아지길 바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자책해봤자 나아지는 게 없다고 깨달아서다.  

   

밀로 만든 맥주를 못 마신다면 소주나 막걸리, 보드카 등등 먹을 수 있는 술은 많다.

생일날 케이크를 못 먹는다면 떡케이크를 먹으면 된다.

파스타를 못 먹는다면 리소토를 먹으면 된다. 파스타 파는 곳엔 대부분 리소토도 파니까.

고기는 종류별로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견과류 까짓것 안 먹으면 된다. 음식 위에 뿌려 나오면 걷어내고 먹으면 그만이지.

치킨을 못 먹는다면 구운 치킨이나 쌀가루를 묻혀 튀긴 치킨을 먹으면 된다.

국수를 먹지 못하니 쌀국수를 먹으면 된다.     

약간 번거로울 뿐이지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다.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반응 물질들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멀리멀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길. 

아이가 자라면서 알레르기 반응도 점차 줄어들고 있으니 희망을 꺾지 않고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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