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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Mar 22. 2017

밖으로 나와, 안이 더 위험한 곳이야

불안감과 마주하기


무슨 거창한 궤도를 따라 운행하다 탈선하는 것도 아니고, 적을 걸쳐 놓은 상태에서 안전한 모험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쪼글쪼글해졌다. 무급으로 쉬는 것, 고과 불이익, 진급이 밀리는 것, 평판이 나빠지는 것 등등 걱정을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내 휴직에 대해 걸고 있는 기대감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큰 발전 없이 돌아올 가능성이 확률상 더 높다고 생각하니 휴직도 전에 복직이 두려워지려 했다.


고작 휴직 갖고 뭘 그래! 불안해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말했다. 아직 젊고, 돈이야 나중에 벌면 되잖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더 큰 힘을 준 충고들은 이런 것이었다.


그래, 원래 큰 결정 하고 나면 마지막까지도 이게 맞나 싶고 그러는 거야. 근데, 곧 괜찮아질 거야.


중대한 결정도 큰 고민 없이 쉽게 내지르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은 동물적인 직관으로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야! 를 금방 알아챈다. 매몰비용을 아까워하지 않고 금방 손을 떼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일단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만약 실패하면? 그럼 그건 그때 생각하자, 고 생각한다. 입사 1년 차, 2년 차에 회사를 나간 친구들은 대부분 이런 타입이었다. 나는 이런 친구들이 너무 좋았다. 심플하고, 러블리했다.


반면 나를 포함하여 선택을 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고민하고, 종이에 써 보고, 그려 보고, 여러 사람들한테 상담받고, 점 보러 다니고, 그러고도 선택을 못 내리고, 선택을 내린 뒤에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도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던 사람. 손에 쥔 것은 다 잘하고 싶어 하고, 만인에게 좋은 소리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고민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주말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퇴사를 꿈꾸는 친구 한 명과 같이 커피를 마셨다. 그 친구도 퇴사를 생각하며 대차대조표를 몇 번씩 써 본 사람이다. 타로점도 여러 번 봤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 그만두고 쉬고 싶은데 이 회사 나가면 인생이 망할 것 같아서 퇴사를 못하겠어. 회사를 다닐수록 더 용기가 없어지는 것 같아. 내가 봤을 때 이 친구는 동네 마트에서 일하더라도 영업 매출을 따박따박 잘 챙겨서 점주의 사랑을 받을 아이였다.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데, 우린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걸까?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따뜻해진 날씨에 머플러를 벗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아직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기엔 멀었지만, 쌀랑쌀랑 찬 바람 끝에 따뜻한 햇살이 겨울의 끝자락을 걷어내고 있다.


종일 바람 부는 날, 밖을 보면

누가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을 위해 허공은 가지를 빌려주었을까


그 바람, 밖에서 부는데 왜 늘 안이 흔들리는지


종일 바람을 보면

간간히 말 건너 말을 한다


밖으로 나와, 어서 나와

안이 더 위험한 곳이야


이규리 시, <허공은 가지를> 중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친구에게 카톡으로 위의 시를 보냈다. 금방 답신이 왔다.

밖은 춥고 안은 위험하니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 답변마저도 너무 우리다워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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