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돌 Dec 31. 2017

휴직하면 눈이 아플 때까지 책을 볼 거야

라는 다짐은 어디로: 올해 독서 결산

평일 낮에 책 읽는 재미

어렸을 때부터 가장 꾸준히 좋아해 온 활동은 뭔가를 읽는 것이다. 책, 잡지, 신문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좋아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대사에 반해서 한 글자 한 글자를 노트에 옮겨 적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다 읽기 위해서라도 일찍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때의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숫자와 단문 위주의 이메일, 엑셀, PPT만 보게 되면서 점점 독서 능력이 떨어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긴 호흡의 글을 읽는 것, 특히 번역한 책을 읽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꼭 읽을 시간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뭔가 묵직한 것을 읽고 텍스트를 소화할 '여력'이 없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한국어로 쓰인 소설이라도 플롯이 강렬하지 않으면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짧고 가벼운 에세이만 겨우 읽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올해 회사를 휴직하고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비 오고 눈 오는 날, 남들은 출근하는데 나는 출근하지 않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책을 야금야금 읽는 재미란!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검색해 '813.8 김 63ㅂ' 같은 청구기호를 적어놓았다가 서고의 모퉁이를 돌며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찾는 책에 다가갈 때의 그 두근거림 또한 좋았다. 휴직 이후 살길을 찾기 위해 경제, 경영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보고 좋아서 저 책을 찾아보고, 저 책을 보니 또 이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서 배움이 이어지는 선순환의 과정도 참 좋았다.

카페에서 책 읽는 재미


올해 독서의 가장 큰 변화는 전자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전자책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계속 외면하다가 올해 들어 영어공부를 핑계로 아마존 킨들을 샀다. 한국어 책을 읽기 위해 전자책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는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자책은 혁명이었다. 책 수십 권을 넣어도 가방이 무겁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책을 읽기도 한층 수월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인간인지, 전자책으로 본 책은 종이책보다 감상의 깊이도 얕고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장편소설이나 여러 번 곱씹어볼 책은 무조건 종이책을 선호한다. 전자책으론 주로 비문학이나 정보전달 글, 호흡이 짧은 글 위주을 읽는다.

노트북으로 틈틈이 전자책 읽기


올해의 마지막 날, 휴직하면서 했던 '눈이 아플 때까지 책을 읽겠다'는 다짐을 잘 지켰는지 생각해 본다.  대학 졸업 이후 다시 찾은 도서관에서 나는 '세상엔 재미있는 책이 너무 많으니까 오래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 원형의 나를 다시 만났다. 그동안 일에 매몰되어 읽고 쓰기라는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를 놓쳤던 것을 반성했다. 평일 낮의 달콤함을 누리며 즐겁게, 열심히 읽었다. 행복했다.


책을 많이 었다고 고민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 맺을 것인가? 무엇보다, 어떻게 나 자신으로 살아갈 것인가?

도서관에 가서 책이 가득한 서고를 보면 위안이 된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정제된 언어로 생각을 정리해 놓은 사람이 분명히 있다.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면 책을 통해 이들의 지혜를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겠지만, 지금은 일단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끝으로 올해 읽은 책 중 장르별로 가장 좋았던 책,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한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잡지]

Hi Shanghai

중국 문화/여행 관련 독립잡지이다. 내가 산 호는 훠궈+치파오 특집이었는데 훠궈 향신료가 가득한 표지를 보니 아니 살 수 없어 샀다. 중국에  대한 로망을 자극하는 잡지이므로 신년 목표가 중국어 공부인 사람이 보면 좋겠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646745


[떠나고 싶은 날, 여행 에세이]

바르셀로나 지금이 좋아: 1남 1녀 1 고양이의 바르셀로나 생활기 (정다운 저/박두산 사진)

세계여행을 마친 부부가 바르셀로나에 2년간 정착해서 사는 이야기. 여행과 일상 사이 그 어딘가, 대안과 주류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추천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06792


[한번 읽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

일본 소설: 금수(미야모토 테루)

정말 오랜만에 소설 읽기의 기쁨을 느꼈다. 플롯도 감정 묘사도 너무 훌륭한, 결이 곱게 잘 쓰인 소설. 이 책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도 다룬 바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044413


한국소설: 사랑이 달리다(심윤경)

장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은 재미이다. 이 책은 재미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세시까지 깔깔거리면서 읽었다. 2012년에 나온 소설인데 왜 나는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969656


외국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앤드류 포터)

잘 지은 현미밥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소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꼭꼭 씹어 넘기다 보면 단맛이 느껴진다. 책을 덮고 나면 읽기 전보다 어른이 된 것 같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587775


[에세이]

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강수희/패트릭 라이든)

자연농 농부들이 전해주는 삶의 지혜. 뭘 더 할까를 생각하지 말고 뭘 안 할지를 생각하는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열심히 사는데도 공허하기만 하고, 내가 나를 착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668959


[심리학 및 명상]

삶에서 깨어나기(타라 브랙)

나는 뭔가 잘못되었으며 끊임없이 뭔가를 성취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427290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크하르트 톨레)

마음이 항상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지금 이 순간'에는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구절에 밑줄 긋고 싶은 책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753301


[다운시프트 및 미니멀 라이프]

행복의 가격(태미 스트로벨)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비를 하고, 그 소비 수준에 맞추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는 삶. 이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이 부부는 일과 소비의 악순환을 거부하고 3.3평짜리 집을 지어(정말 작다) 살면서 좁은 공간에서 적은 물건만 갖고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85538


[즐거운 노동은 가능한가]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자본론을 읽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과, 노동자로서 생산 수단을 가지지 않는 이상 자본가 앞에 자유로워지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662992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휴직하고 뭐하니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