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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Jun 24. 2018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삶

복직 백 일차의 소고:  You are what you love

사랑받고 싶었던 어른아이 성장기


나는 남의 평가와 인정을 무척이나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속에 여전히 ‘엄마는 왜 나한테 칭찬을 안 해줘?”하고 울던 어린아이를 데리고 살았다. 오랫동안 굶은 사람이 식탐을 부리듯 칭찬을 욕심냈다. 항상 마음속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이십 대 중반까지 학교는 노력과 보상이 어느 정도 비례하던 세계였고, 나는 그 안전한 세계의 보호를 받으며 늘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꿔 왔다.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흥미를 어떤 특정한 직업으로 구현해 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멋진 결과물을 내어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꿈을 갖고 시작한 회사 생활에서 사회의 언어는 학교의 언어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회사는 ‘사랑’ 받고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보상과 피드백을 받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보상과 피드백은 내가 컨트롤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진심을 다해도 잘 안 될 때도 있었고, 운 좋게 좋은 결과를 얻을 때도 있었다. 세상 일은 참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라는 걸 배웠다. 일은 대개가 잘 안 되기 마련이고, 남의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 촘촘하게 짜여진 조직 속에서 나는 먼지 같은 무력한 존재로 느껴졌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내 마음가짐 정도였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휴직을 했다. 연봉도 명함도 잠시 내려놓고 민낯의 나를 만났다. 남들의 피드백에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때론 평일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다. 다만 그 햇살 아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삶을 살고 싶어 하는구나, 이런 일을 하면 즐겁겠구나-라는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갔다. 아직 딱딱한 두부가 되지 못한, 풀어진 순두부 같은 아이디어들이었다. 그걸로 뭐가 될 건데? 어떻게 돈을 벌 건데?라는 뾰족한 질문 앞에서 그 몽글몽글한 것들은 마치 형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가받는 삶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삶으로


열 달을 놀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 생활이 생각했던 것처럼 풀리지는 않았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딴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매일 출근길에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남들의 인정과 보상에 더 이상 내 인생을 걸 수 없다면, 이제 넌 어떻게 살고 싶은데?라는 질문에, 작년에 만났던 몽글몽글한 것들이 둥실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구체화하고, 이름을 붙여 갔다. 기준을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나 자신의 만족에 두었다. 사회 속에서 남들이 나에게 붙이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정의하려고 했다.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는 그 속에서 아주 작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아 그것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적당히 했다.


조심스럽게,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역할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삶'에서 한 발을 떼었다. ‘상황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삶’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그렇게 살아도 별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뭔가 대단한 걸 하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냥 내 그릇에 담길 만큼만 하고, 내 그릇만큼의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인생이 재미있어졌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기로 결심한 날의 낙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먼저임을 알겠다.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받으면 된다. 남들의 평가는 가변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공정하지 못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남에게 별 관심이 없으며,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남을 본다. 그러니 남들의 평가와 인정에 내 인생을 걸 수 없다.


남들이 좋아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한다’는 ‘남이 나를 좋아해 준다’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다. 어떤 척박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작은 영역을 찾아 그곳으로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외부의 환경과 상관없이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법륜 스님 말씀대로, 꽃을 좋아하면 꽃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은 것이다.  


대학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두 스승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학부생들의 고민을 늘 다정하게 들어주시던 A교수님. 교수님과의 면담 시간에 대학 생활이 힘들다며 실컷 하소연을 한 뒤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도 교수가 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디셨어요?” 교수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00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어.


그 신선 같은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교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아보니 인생은 별다른 게 없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가까이에 두고 즐기는 거야. 나는 구름을 좋아해서 매일 하늘의 구름을 보는데, 그럼 기분이 좋아져.”


그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곁에는 다양한 차(茶)며, 연구하시는 책들, 소설책과 시집, 학부생들이 만든 문집들, 학생들과 찍은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 A교수님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무게를 느낀다. 구름을 좋아했던 교수님은 지금은 구름 곁에 계신다. 구름 곁에서 예의 그 미소를 짓고 계셨으면 좋겠다.


또 다른 B교수님은 영문학 작품을 읽고 에세이를 제출하는 수업을 진행하셨다. 외국 작품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글쓰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B교수님이 에세이를 첨삭하면서 남긴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에세이는 잘 쓰면 좋고, 못 써도 큰 일은 아니랍니다. 본인이 잘 쓰지 못해도 잘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으면 되고요. You are what you love, not who loves you.”


남들이 내 글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남이 쓴 글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것을 즐길 수 있으면 된다는 된다는 것. 누가 너를 좋아해 주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네가 뭘 좋아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어.

You are what you love, not who loves you.



왜 인생의 진리를 이렇게 단문으로 알려 주셨을까. 이제야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지금의 이 느낌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남들의 도장을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잘했다고 도장 찍어주는 삶,  남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챙기는 삶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소심한 걸음을 옮기고 싶다.







배경 그림: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인생을 채워 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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