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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Sep 16. 2018

틀리는 연습, 욕먹는 연습

셀프 교정교열 : '도리와 의무'를 넘어서

5월에 독립출판 워크숍을 들은 후, 내 책 만들기 프로젝트는 한정 없이 늘어져 왔다. 그런데 작업이 더뎠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최근에 느낀 건 직접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내가 그동안 살아온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내가 대인관계나 일을 대할 때 반복하는 패턴들이 책 만들기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나다움과 스탠더드 사이의 갈등

나는 애초에 책을 왜 만드려고 했을까?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서. 회사를 한 일 년 쉬어봤어요, 이래저래서 쉬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걸 느꼈습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 보니 또 이렇더라고요, 라는 별 거 없는 이야기.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니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육아휴직도 난임 휴직도 아닌 그냥 쌩 노는 휴직은, 아무도 안 가본 여행지 같았다. 후기도 없고 참고 사례도 없고 성공담도 실패담도 없는 길. 위인전이나 자기계발서,  힐링 서적은 그 길에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나처럼 휴직 또는 퇴사를 감행했던 보통 사람들의 블로그와 SNS 몇 줄이 오히려 힘이 되었다. 어쩌다 나 같은 사람을 찾으면 모든 포스팅을 읽어 보았다. 아, 이 사람 마음도 나와 같구나, 세상에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응원과 위로를 받았다. 지금 어딘가에 꼭 나같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어떤 기교나 가식 없이.


그런데 막상, 책을 만들기 시작하니 '나다운 것'을 점점 내려놓고 '업계 스탠더드'를 따르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책을 만들 때는 이렇게 해야 하더라, 책을 만들고 나서 홍보는 이렇게, 유통은 이렇게 한다더라, 하는 정보들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늘 성실한 학생이었던 나는 독립출판 워크숍이며 편집디자인 책에서 배운 것들을 교본처럼 삼아 내 책에 적용하려 했다.



셀프 교정교열의 험난함

브런치에 연재한 글로 어느 정도 원고는 나와 있었고, 1) 워드에서 교정 교열 과정을 한번 거쳐 2) 인디자인에 얹는다, 3) 표지와 내부 이미지를 정한다가 원래 내가 생각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여러 책 만들기 강좌에 따르면, 출판사에서는 교정을 최소 네다섯 번 이상은 본다고 했다. PC에서 한번 쭉 보는 PC교, 재교, 삼교, 그리고 최종 보스(상사)가 오케이, 이대로 출판해라,라고 컨펌해 주는 오케이교까지. 나는 이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독자와 (종이에 쓰일) 나무에 대한 예의로서 세 번은 셀프 퇴고 & 교정교열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몇 주에 걸친 지루한 퇴고&교정교열 과정에서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열심히 고친 것 같지만, 사실 퇴근 후 모니터 앞에서 괴로워하거나 딴짓을 한 게 대부분이다. 덕분에 카페는 참 많이 갔다.) 몇 가지 느낀 바가 있었다.


1. 자기 글을 고치는 것은 아무리 글쓰기 고수라도 어렵다.

2. 자기 글을 계속 보면 볼수록 글이 바보 같이 보인다.이에 대해 금정연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을 남겼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하는 책이 많아집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쓰는 글이 싫어집니다. 이것이 독서와 글쓰기의 아이러니입니다.
- <아무튼, 택시> 중에서


3) 한글 맞춤법의 세계는 매우 심오하여, 일반인이 퇴근 후에 자기 글을 교정교열 보는 것은 몹시 어려우며 눈과 어깨 건강에 좋지 않다.

4) 퇴고 교정 교열 편집의 세계에 "완벽"이란 없다. 어떤 글이 완벽할 수가 있을까?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하고 어느 선에서 만족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30편의 브런치 글을 온라인 한글 맞춤법 검사기에 넣어 돌리, 기본적인 오류를 걸러 낸 후 2차 셀프 교정교열을 시작했다. 며칠 못 가 백기를 들었다. 기본적인 맞춤법은 따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체의 비문과 오탈자가 없는 글은 지금 내 수준에서 어려워보였다. 어디가 틀리더라도,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책 맨 앞장에 써야지.


"저자는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역량이 부족하여 여전히 비문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의 미흡한 부분은 혹시 2쇄를 찍게 된다면 반드시 수정할 예정이다."


교정교열 외에도 내가 신경 쓴 부분은 표지와 책의 구성이었다. 전에는 서점에 가면 열심히 책 내용 자체를 탐했다면 이제는 서점에 가면 책을 만져보고 쓸어보고 내부 편집디자인을 어떻게 했는지 위주로 봤다. 그러다 보니 점점 편집디자인의 룰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목차는 이렇게, 제목 배열은 이렇게, 페이지 표기는 이렇게. 표지는 예전엔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었는데 요새는 이런 스타일이 대세다, 라는 것.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런 '대세'를 슬금슬금 따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똥손이다. 인디자인에 어떤 식으로 창의적으로 배열을 해 봐도 뭔가 부족했다. 기성 출판물의 안정감도 독립출판물의 '힙'함도 없었다. 새삼 나의 센스 없음에 좌절했다. 나는 센스가 없으니 안전하게 남 하는 방식을 따라가야지, 하고 방향을 틀었다. 서점에서 많이 본 식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페이지를 배열했다. 표지는...... 표지는 어떡하지. 혼자 디자인하는 건 답이 안 나오니 어디 디자이너라도 구해봐야 하나, 그런데 셀프 독립출판인데 디자이너 쓰는 게 맞나,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즐거우려고 시작한 일이 점점 즐겁지가 않아졌다.  


애초에 출판업과는 조금도 관련 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 출판계 스탠더드에 맞게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스탠더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기성 출판사를 끼지 않고 독립출판이라는 걸 하는 건데, 나는 기존 출판 룰에 계속 눈치를 봤다. 왜였을까? 무엇 때문에 나는 퇴근 후에도 마치 회사에서 일을 하듯이 모니터 앞에 끙끙대고 앉아 있었을까?



남들이 다 가는 길에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나의 부모님은 평생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오면서 지방에서 딸 둘을 '서울 유학'까지 시킨 분들이다. 부모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남들이 많이 가는 길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은 본분을 다해야 한다. 그걸 다 해 내는 과정이 인생이다'였다.


여느 부모님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우리 부모님은 유달리 '스탠더드', '도리', '의무'를 추구하셨던 것 같다. 그게 그분들 세대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미덕이었으니까. 반대로 뭔가 유별난 것, 사회성 없는 것, 감정 변화가 심한 것, 불규칙하고 변화가 많은 생활, 모든 '대안'자가 붙는 것들, 예민한 예술가 스타일을 꺼려했다. 오죽하면 아버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박정희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여자가 애를 안 낳아봤다'는 이유로 신뢰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너는 저렇게 살면 안돼'라고 말하진 않으셨지만, 어린 마음에도 어떤 길을 가야 부모님을 덜 걱정시킬지 뻔히 보였던 것 같다.


이젠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서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가르침은 여전히 내 안의 비판자처럼 남아서 나를 호시탐탐 지켜본다. '자고로, 응당, ~라면 이래야지'를 나도 여전히 마음속에 갖고 산다. 성인이라면 응당 밥벌이를 해야지. 직장인이면 성실히 월급값을 해야지. 자식이면 자고로 명절에 내려가서 부모님 도와드려야지.


 스스로 정말 이런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만들면서도 똑같은 패턴을 겪었다. 책이라면 응당 맞춤법이 정확해야지. 자고로 제목은 이래야지. 이런 식의 편집이 대세인 건 다 이유가 있겠지. 그래도 책인데 너무 '없어 보이지는' 말아야지, 등등.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

'도리'와 '의무'를 중시하면서 살아온 나는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취업이라는 큰 '의무'를 하나 해치우고 나서야 조금씩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하고 싶은지 하나씩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 표현도 못했다. 휴직은 처음으로 '쉬고 싶다'라고 내 목소리를 내었던 때였다. 그때 내가 용기를 내어 나 자신을 믿어준 덕택에 나는 그 뒤로 조금씩 나를 표현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뭘 먹고 싶은지를 몰랐다면, 이제는 내가 오늘 짜장면이 땡긴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상대에게 용기를 내어 '오늘 짜장면 먹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은 내가 짜장면 먹고 싶다고 할 때 상대가 '나는 짜장면 싫은?'라고 하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뭔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를 세상에 표현하게 되면 피드백에 노출되게 된다. 표현하는 용기는 부정적인 피드백도 수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나는 아직 이 부분에서 걸음마 걷는 아이처럼 왕초보다.


욕구가 생겼다. 나를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동조받지 못할까 봐, 혹시나 욕먹을까 봐 고민된다. 그래서 계속 '스탠더드'에 집착한다. 이렇게 하면 안전하겠지, 욕먹지 않겠지, 이해받겠지. 그러니 재미로 시작한 일도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이쯤 되면 일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남의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는 마음으로는 어디를 가서 뭘 해도 재밌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책을 연습으로 생각하도록 하자. 한번 표현해 보는 연습. 모든 '도리'에서 벗어나, 응당 자고로 해야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어디까지 나를 표현해 볼 수 있는지 보는 연습. 어느 정도 '스탠더드'를 따르고 어느 정도를 나답게 해 볼 지 결정해 보는 연습. 그리고 내가 한 일에 대한 사람들의 무반응, 동의, 나아가 비난에도 영향받지 않는 연습. 왜냐면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이니까.


이젠 도리는 그만 찾고 싶다



배경 이미지: Photo by Radu Marcus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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