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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Sep 29. 2018

괜찮아, 아마추어잖아

프로 아닌 아마추어의 즐거운 책 만들기 

책 쓰기와 책 만들기, 책 팔기는 다르다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내가 책 만드는 과정도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책 작업을 하면서 책의 내용을 채우는 것(글쓰기)과 그 내용을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책을 파는 것 세 가지는 완전히 다른 일임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늘 즐거웠다. 추상적인 생각과 감정을 언어를 빌려 구체화해 나가는 것,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단어를 찾아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내 글에 누군가가 작은 공감을 눌러주기만 해도 시간을 들여 글을 쓴 수고로움이 다 보상받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이라는데 뭐 어때?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뭐 어때? 하면서 타인의 평가도 어느 정도 비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만드는 것그런 글을 가장 독자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일이다.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책 전체의 컨셉, 표지 디자인, 내부 편집디자인을 정하는 것. 불필요한 부분은 가지 치고 포인트로 잡을 부분은 더 강조를 하는 것. 요즘 핫한 트렌드를 읽고, 트렌드에 부합하는 책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파는 것은 시장과 독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끊임없이 노출하고 어필하는 일이다.  스타트업 사장님이 투자를 받기 위해 가방 하나 들고 이곳저곳에 프레젠테이션하러 다니는 것처럼, 조금은 능청스러워야 하고 온/오프라인에서 붙임성을 발휘해야 하며 때론 약간의 구차함도 감수해야 한다. 요즘 시대의 언어(SNS)를 잘 구사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여, 분업은 옳았습니다

솔직히 가장 막혔던 부분은 편집과 디자인이었다. 인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이라는 어도비 삼총사는 아주 섬세한 녀석들이었다. 구현할 수 있는 기능도 많고 단축키도 어찌나 많은지, 엑셀과 워드만 다루던 문과생(나)은 매일 어도비 창만 열면 동공 지진을 경험했다.


문제는 기능은 어찌어찌 안다 해도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 백지 위에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디자인 감각이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디자인적인 부분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해 보고 싶었는데(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워 삽화를 그린다던가) 이 부분은 적당히 포기하고 주변에 도움받을 수 있는 곳에서 적당히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나느 회사라는 큰 조직 내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담당해 오면서, 늘 '내가 하는 일의 전체를 보고 싶다'는 갈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독립출판을 개인적인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로 삼아 초기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까지 다 담당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다. 그런데 이제야 '왜 분업이 필요한지 알겠다!'는 교훈을 얻고 있는 중이다. '분업'과 '전문화'를 강조하신 애덤 스미스님은 과연 옳으셨던 것이다. 글은 작가에게, 편집은 편집자에게! 그래서 출판사도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겠는가......



즐거운 아마추어 되기

"다 재밌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 다른 거였어. 어떡하지? 너무 힘드네." 하고 호소하는 나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너 아마추어잖아.
아마추어가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


친구의 말이 상당한 위안이 되었다. 그래, 나는 아마추어였지! 


아마추어가 책을 만들어봤자 겨우 백여 권, 사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별 큰 차이도 없는 것. 그래 봤자 몇십 명의 독자, 그들에게 내 책은 그냥 무수한 책 중의 한 권일뿐.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말 그대로 취미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수준에서 하면 되는데, 또 오랜 습관대로 힘줘서 잘 하려고 했었구나.


존경하는 교수님은 교수가 되기까지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냐는 내 우문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어."라는 현답을 주셨었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데 아마추어의 세계에서 괜히 어깨에 힘줄 필요가 없다. 철저한 프로 정신을 강조하는 세상이지만 여기서만큼은 철저한 아마추어 정신으로, 어설프게 그러나 즐겁게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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