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돌 Sep 26. 2018

책이 나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선지원 후제작: 독립출판 마켓 지원기

독립출판물을 낸다면 꼭 참여하고 싶었던 두 행사가 있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 아트북페어)과 세종예술시장 소소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아트북과 독립출판물 작가들이 직접 판매 부스를 차려 독자들을 만나는 시장이고, 세종예술시장 소소는 '누구나 예술가가 되어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을 모토로 독립출판물과 여러 미술/디자인 작품들을 판매한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이미 참가신청이 끝난 상태라, 소소시장 모집 시즌을 기다려 지원서를 냈다.


http://unlimited-edition.org/


https://www.facebook.com/sejongartsmarket



독립출판물 책 제목 정하기

브런치 매거진 연재를 통해 어느 정도 원고는 확보가 되어 있었지만, 원고 외에 제목, 표지, 등등 모든 게 미정이었다. 책 제목은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독자를 사로잡는 표지, 착 감기는 제목만큼 판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을까. 나의 창의력과 센스가 닿는 한에서 책 제목 후보를 몇 가지 적어 보았다.


- 대담한 휴직 일기

- 그래서 휴직하고 뭐하니

-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

-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

- 모종의 일탈 : 무급휴직 일기


친구들에게 어떤 제목이 제일 좋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소리 내어 읽어 보기도 하고, 인쇄했을 때의 느낌을 보기 위해 인쇄를 해 보기도 했다. 한 친구는 꼭 책 제목에 '휴직'을 넣어야 하냐고 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용적인(?) 제목을 짓는 게 좋지 않냐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휴직에 대한 이야기, 특히 장기 무급휴직에 대한 이야기가 내가 직접 해 본 것이자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휴직'이라는 단어를 제목에서 뺄 수가 없었다. 사실은 다른 제목이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간 내가 어느 정도는 창의적인 사람인 줄 알고 살았었는데 아니었다. 제목을 고심하던 그 며칠은 정말 카피라이터의 고충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고심의 흔적들


인쇄해서 보았을 때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의 느낌이 가장 좋았다. 팀에서 장기 휴직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속 부서원을 대상으로 '휴직 인사' 메일을 미리 써 놓고, 휴직 당일에 예약 발신되도록 하고 회사를 떠나곤 했다. 그리고 대개 그 휴직 인사는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에 들어가게 되어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하였고 (... 중략) 더 건강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이하 생략)'이라는 상투어로 구성되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는 그 휴직 인사에서 착안한 제목이었다. 친구들의 반응도 괜찮아 제목을 이걸로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를 막상 인디자인 표지에 올려보니 제목이 너무 길어 책등을 가득 채우는 지경이었다.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 '안녕하세요'를 넣고 싶었는데, 왠지 앞으로도 홍보며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이 '안녕하세요' 다섯 자 때문에 계속 부딪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안녕하세요'를 버리고,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로 잠정적으로 제목을 정했다.

 

표지 생초안(가안)


잠깐, 띄어쓰기는 '일 년간'이 맞나? 최소한 제목의 띄어쓰기는 통용되는 규칙을 지켜야 할 것 같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질문글을 올렸다. '일 년간'이 맞는 것 같은데, 혹시 '일년간'으로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일년간'이 가능하다면 띄어쓰기 한 자만큼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 년간' 또는 '1년간'이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 어딘가에 더 좋은 제목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한계는 여기까지다. 일단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로 지원하기로 했다.



n년만에 쓰는 자소서, 아니 지원서

제목 외에도 소소시장 지원서에서 요구하는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 참가 품목(주/부)

- 작업 동기 및 목적

- 소소 시장에서 관람객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

- 본인의 작품을 간단하게 50자 이내로 소개해 주세요

- 작품 이미지 또는 작품 사진


작품을 50자 이내로 소개해 달라니! 밤새워 취업 자소서를 썼던 그때 그 마음이 떠올랐다. '지원 동기',  '입사 후 10년 뒤 내 모습' 같은 추상적인 질문들에 머리를 쥐어뜯던 날들. 마감 기한이 다가오자 출근길 버스 안에서 지원서 항목들이 눈앞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퇴근 후 노트북 앞에 앉아 한 항목 한 항목을 채워나갔다. 점심시간에 혼자 샌드위치를 먹으며 답변을 고심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되어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나 같은 사람이 지원하는 게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하나씩 답변을 만들어가면서 막연했던 컨셉을 조금씩 구체화해나갔다.



● 작업 동기 및 목적 :

“지금 멈추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늘 살던 대로 살 것 같았습니다. 조급하고 각박하게, 늘 남의 인정을 갈구하면서, 남들이 내게 바라는 것을 하면서.” – 책 중에서

저의 첫 독립출판물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한 1년 무급휴직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늘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왔습니다. 마치 알을 낳는 닭을 대하듯이 저 자신을 대해 왔습니다. 휴직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 닭에게 알을 낳지 않아도 너는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돈을 벌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저를 토닥이며 일 년을 보내자 놀랍게도 다시 힘이 생겼습니다.

휴직하면서 느낀 것은 ‘쉬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생산성과 근면성실을 중시하는 사회라 잠시 쉬어가는 사람은 불안해지기 쉽습니다. 저처럼 휴직, 퇴사, 갭이어(Gap year), 자발적 안식기를 보내며 생각이 많을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에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소소시장에서 관람객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 :

독립출판물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와 엽서를 전시 및 판매 예정입니다. 전시 테마는 “당신의 속도, 나의 속도”입니다. 더 이상 회사의 속도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나의 속도대로 가고 싶어서 일 년의 휴직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내 속도, 내 기준, 내 색깔대로 살아가는 제멋대로의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본인의 작품을 간단하게 50자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

(참여작가 선정팀은 SNS, 인쇄용 브로셔 등에 홍보될 예정입니다.)

“1년을 쉬게 된다면 뭘 하고 싶어?” 회사와 퇴사 사이, 1년 무급휴직 도전기


그리고 챕터 1의 몇 페이지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지원서와 함께 송부했다. '발신'을 누르는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책날개 초안
책내용 초안


그리고 몇 주 뒤, 감사하게도 합격 통보, 아니 참여작가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선정 메일을 받은 첫 날은 뛸 듯이 기뻤는데, 둘째 날부터 압박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두달 뒤 소소시장에 내가 직접 만든 책을 들고나갈 수 있을까?





이전 06화 밥벌이하며 딴짓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