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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Sep 01. 2018

밥벌이하며 딴짓하기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어일론> 파티 후기

뜨거운 여름, 회사 일은 일대로 하고 퇴근 후에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스페인 남부를 연상케 하는(그러나 시에스타라는 것은 없는) 엄청난 더위 속에서 허덕허덕 대다 집에 돌아오면 노트북을 켤 마음도 들지 않는다. 


'딴짓'도 쉽지가 않다. 처음엔 와, 재미있겠다! 하고 시작한 일도 이런저런 욕심이 덕지덕지 붙는 순간 괴로워지고 만다. 책을 빨리 만드는 것, 잘 만드는 것, 많이 파는 것을 떠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자고 다시 마음을 먹어 본다. 하루하루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해 또 어떤 걸 발견했는지에 집중해야지. 


지지부진 진도가 나가지 않는 독립출판 작업을 잠시 접어두고 딴짓 시스터즈가 주최하는 <어일론> 파티에 다녀왔다. 딴짓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어일론(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어살론(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결론(어떻게 결혼해야 하는가) 같은, 듣기만 해도 혹하는 주제들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같이 이야기해보는 재미난 자리를 갖곤 한다. 이번 주제는 <어일론>이었다. 카카오에 다니며 <남의집 프로젝트>라는 딴짓 프로젝트를 병행한 끝에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창업한 김성용님의 강연을 듣고, 소규모 그룹으로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의 기억 중에서 몇 가지 기억남는 꼭지들만 기록해 보려 한다.


우리의 영원한 숙제 , 어일론!



딴짓으로 풍요로워지는 일상 

독립출판 준비를 직장과 병행하면서,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인지라, 본업 후에 취미 이상의 다른 일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려고 퇴근 후에 예능 하나를 못 보나? (이젠 내게 재미없는) 내 책을 만드려니 (재미있는) 남의 책을 볼 시간이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직장을 다니며 <남의집 프로젝트>를 병행한 김성용님에게도 분명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이런저런 힘든 부분을 이겨내고 딴짓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회사 안에서 만나기 힘든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게 본인에게 큰 에너지와 자극을 주었고, 그것 자체가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히려 딴짓을 하면서 정기적인 월급의 소중함('스쳐 지나가는 월급도 월급이더라.')을 알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출처: Instagram @ddanzit_m


강연은 무려 68혁명의 구호를 ppt 화면에 띄우며 비장하게 마무리하였다. 


상상력에 권력을 


루틴한 일상과 경직된 조직 속에 매몰되지 말자, 나와 일에 대한 상상력을 놓지 말자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하는 강연이었다. 상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정기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들 근처를 기웃거려야지. 나는 싫어하는 일/ 별로 안 끌리는 일에도 많은 정성과 에너지를 쏟곤 하는데, 최근에 열정과 체력 역시 한정된 자원임을 통감하고 있다. 하고싶은 일을 할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서, 별로 하기 싫은 일은 대범하게 대충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http://naamezip.com



딴짓을 돕는 '공간'의 힘   

이번 어살론 파티는 딴짓 시스터즈의 새로운 공간 "틈"에서 진행되었다. 아담한 한옥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서울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간 "틈" (Instagram @dear.mydress.my)


이 공간은 딴짓시스터즈가 에디터스쿨 및 <어살론> 파티를 진행하는 공간이자, 딴짓시스터즈들의 사무실이기도 하다. 한옥 방 하나가 예쁜 드레스로 가득해서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3호님의 드레스 작업실이었다.  3호님은 생업인 마케팅일과 스몰웨딩이라는 딴짓을 병행하고 있는데 확실히 공간이 있으니 촬영이나 대여 등 좀 더 다양한 일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딴짓>의 새 공간 "틈"을 방문하고 나니 직장과 집이 아닌, 제 3의 장소. 돈을 버는 일 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노트북과 책을 바리바리 챙겨 스타벅스에 가다 보면 출발도 하기 전에 창작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 펜이나 컵 같은 개인물품도 비치해 둘 수 있고 작업물을 잠시 펼쳐 두고 가도 되는 장소, 가능하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도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런 장소를 찾아 잘 활용한다면 직장인의 딴짓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왜 하나의 일만 해야 하나? 라는 질문

나는 늘 나라는 인간을 하나의 온전한 직업으로 구현해 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내가 미완성으로 느껴졌다. 소위 '사'자 직업도 아니고 어떤 분야의 아주 전문가라고도 할 수 없는 나. 나를 먹여살리는 '회사원'이라는 직업은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표현하기엔 한참 부족해 보였다.

'직장'은 하나만 다닐 수 있어도 나를 세상에 알리고 표현하는 일은 여러 개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슬럼프에서 빠져다. 좋아하는 일을 반드시 직업으로 삼아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언제 어디에 있든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내 시간을 채워나가면 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직업으로 나를 정의하지 않기', '하고 싶은 일 하기' 프로젝트로 몇 달을 보내며 전보다 훨씬 평안하고 행복해졌다.


직업나의 상위 카테고리가 될 수 없다. 직장이 주는 명함은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는 하위 항목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생계를 위한 일(회사, 직장)은 그저 조금 큰 일부일 뿐이고, 그 외 부분을 다양한 '일'과 '관계'로 다채롭게 채워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찰스 핸디의 말을 빌리자면 여러 개의 좋아하는/잘하는 일들로 나를 포트폴리오하는 것.

누구나 자기만의 딴짓거리들이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업에 대한 헌신과 몰입만 추앙받는 게 아니라 직업 외의 삶을 가꾸는 것도 가치있다고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 나부터 끊임없이 딴짓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남의 딴짓도 응원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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