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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Oct 21. 2018

회사 다니며 책을 만든다는 것

'딴짓'으로 자아실현? 현실은 이렇습니다

회사 일이 힘들 때 

- (구부정해진 허리를 의식적으로 세워 앉으며) "괜찮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잖아. 회사는 인쇄비 벌러 다닌다고 생각하자."


회사 사람이 힘들 때

- (뭔가 단 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괜찮아, 작가에겐 모든 것이 글감이지! 요새 하이퍼 리얼리즘 문학이 대세라는데, 언젠간 저것도 다 소재가 되겠지! 하하!"


책 만들기가 잘 안 될 때

- (집에서도 거북목이 되었다) "괜찮아, 회사 다니면서 취미로 하는 거니까! 어휴 이게 본업이면 어쩔 뻔했어! 하하하!"


평일에 야근할 때

- 부장님: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인데 뭐 좀 먹고 다시 하자. 저녁 먹을 사람?"

- 나: "(오늘 꼭 맞춤법  틀린 거 수정하고 브런치 글도 쓰고 싶었는데...) 저요!"


평일에 회식할 때

- "다들 이번 주 회식 괜찮나?"

- "(이번 주에 가제본 나와야 하는데...) 네 저는 언제든 괜찮습니다!"


평일에 친구들 모임을 하자고 할 때 

- "(어제 늦게까지 작업한다고 몹시 피곤하다) 어 미안, 나 요새 야근이 너무 많네(우는 이모티콘)"


몸이 힘들 때

- '평일엔 일하고 주말에도 푹 쉬질 못하니 체력이 딸리네. 내가 너무 사서 고생하나. 이번 주말엔 그냥 좀 쉴까?'


마음이 힘들 때

-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지금이라도 다른 걸 알아봐야 하나. 독립 출판할 시간에 이직 준비나 자격증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주말에 친구 결혼식이 있을 때

- "(아, 그날 충무로 인쇄소 가야 하는데...) 축하해! 근데 결혼식이 어디라고?"


주말에 집안 행사가 있을 때

- "(아, 그날 충무로 인쇄소 가야 하는데...) 아 근데 엄마 행사가 어디라고?"







운동은 시간이 날 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한다고 했던가. 독립출판물 작업도 시간이 날 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하지 않으면 계속 진전 없이 멈춰 있게 된다. 몇시부터 몇시까진 책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회사에 어영부영 앉아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에 깔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을지 아침부터 머리를 굴려야 한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약속이나 회식이 없도록 한 주의 스케쥴도 잘 관리해야 한다. 


독립출판물 작업을 시작한 뒤로 피곤함은 늘었지만 묘한 안정감이 있다. 회사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내가 회사 외에도 좋아하고 잘 해 볼 수 있는 다른 작업영역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독립출판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이건 그냥 취미로 하는 일이다, 잘 할 필요 없다고 나를 토닥여줄 수 있다. 집과 회사만 오갔던 네모반듯한 평일의 일상 속에 '카페 가서 작업하기', '충무로 인쇄소 가서 견적 받기', '디자인 전공자 만나서 의견 듣기' 등등 전에 해보지 않은 새롭고 신기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 다채로워진 일상이, 사실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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