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에서 보낸 Summer Chirstmas
눈이 펑펑 내리는 곳에, 루돌프가 썰매를 끌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갖고 오시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미지. 크리스마스를 보통 이런 풍경으로 지내온 사람이라면, 지구 반대편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다. 여름과 바다를 사랑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음 크리스마스를 호주에서 보낼 계획을 세워보자.
멜버른에 도착한 날은 크리스마스 당일. 시끌벅적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공항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심지어 365일 24시간 쉬지 않는 공항버스 조차도 1년에 딱 2번만 운행한다는 휴일 시간표로 운행 중이었다. 우리처럼 명절문화가 없는 호주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최대의 휴일로 꼽힌다. 현지인들은 이때 휴가를 즐기고, 대부분의 상점도 문을 닫는다. 멜버른에서 핫하다는 퀸 빅토리아 마켓의 수요 야시장마저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간에는 열리지 않을 정도이다.
멜버른 시티에서 가장 가깝고 대표 관광지 중의 한 곳인 세인트 킬다 비치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얇은 돗자리, 산타모자, 가벼운 스낵이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준비한 전부다. 우리나라의 피크닉 문화와는 사뭇 비교되었다. 가까운 한강에라도 나갈라치면, 텐트에 테이블 의자까지 풀 세팅하고 돗자리는 부피가 크더라도 도톰한 에어매트여야 한다. 김밥이나 도시락을 싸거나, 한 바탕 장을 보거나, 음식을 시켜먹느라 정신없는 모습에서 한가로움은 사실 찾기 힘들다. 쉬러 나왔다가 오히려 텐트 치고 걷는데 더 힘을 빼는 느낌이랄까.
스카프처럼 얇은 천조각 하나를 깔고 음악을 듣고 카드놀이를 하고 샌드위치 한 입을 베어 물며 일광욕을 즐기는 그들에게서 여유로운 삶이 느껴졌다. '여행을 왔으면 최대한 많이 보고 가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을 버리면 여행은 좀 더 편하고 여유로워지기에, 나도 이 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기로 했다. 못 보고 가는 게 있으면 어때, 다음에 또 올 수 있잖아.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도심에 화려한 조명쇼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12월 한 달 내내 멜버른 시청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조명쇼는 크리스마스가 그 마지막 날이다. 호주의 여름은 낮이 무척 길어 9시는 되어야 어두워진다. 도심의 레스토랑은 대부분 닫지만, 아시아권 레스토랑 만은 활짝 열려있다. 근처에서 꽤 유명하다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도심의 크리스마스를 느끼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쇼핑몰 쪽 거리는 한산하지만 멜버른 시청 - 플린더스 역 - 페더레이션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멜버린 시청 앞에는 9시가 되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꽉 차는데, 9시 정각에 멜버른 시청 외곽에 조명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치 시청 건물을 통째로 선물 포장한 듯한 조명이 켜지면 여기저기서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감상하고 싶었지만, 인파에 떠밀려 발걸음이 자연스레 페더레이션 스퀘어 쪽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조명이 켜진 플린더스 역과 그 맞은편 대형 트리에 불이 들어온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는 음악과 함께하는 화려한 조명쇼가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준다.
늦게까지 조명쇼를 볼 계획이라면 숙소로 돌아갈 걱정은 안 해도 좋다. 크리스마스 당일은 대중교통이 모두 무료이고, 막차시간 또한 새벽 늦게까지 연장된다. 자세한 시간과 내용은 홈페이지(https://www.ptv.vic.gov.au)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