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펭귄이 산다고?

동물원도 남극도 아닌 도시에서 야생 펭귄을 만난 이야기

by 프리쏘울


내 고정관념 속에서 펭귄은 동물원에 가거나, 혹은 남극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동물이었다. 사실상 남극에 갈 확률은 희박하고, 내가 본 펭귄은 동물원에서 혹은 TV 속에서, 아니면 뽀로로 인형이 전부였다. 멜버른 여행을 계획하면서 세인트 킬다 비치에 가면 펭귄을 만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지만 내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보더라도 드문드문 몇 마리를 보거나, 운이 나쁘면 아예 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인트 킬다 비치로 가는 길, 저 멀리 넘어가는 해가 보인다.




세인트 킬다 비치는 멜버른에서도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멜버른 여행 중에 하루는 세인트 킬다 비치에서 보내기를 추천한다. 오전에 시내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긴 후, 돗자리와 점심으로 먹을 간단한 음식을 가지고 일광욕과 함께 해변 피크닉을 즐긴다. 저녁땐 비치에 위치한 레스토랑 혹은 바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 석양을 감상하고, 완전히 어두워지면 펭귄을 만나는 코스라면 누구라도 만족할 듯하다.




해가 넘어가는 걸 보고 부리나케 뛰어왔지만, 이미 구름 속으로 묻혀버렸다.


아쉬움 워하며 뒤로 돌아선 순간, 커다란 무지개가 괜찮다고 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릴 필요는 없다. 때로는 뒤를 돌아보며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하니까.



아름다운 석양에 젖어들 무렵, 어느새 주위는 어둑해지고 펭귄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들을 따라 방파제로 향하면서도 '펭귄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어쩌면 못 볼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큰 기대감은 없었다.




펭귄과의 접선지로 향하는 길




펭귄은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있었다. 보여도 저 멀리 희끗희끗 보일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펭귄은 사람들 오가는 길까지 올라와 있었다. 몰려드는 사람들이 익숙한지 그리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펭귄을 만날 때도 에티켓이라는 것이 있는 법. 펭귄이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은 기본, 카메라 플래시나 강한 빛을 비추면 펭귄들의 눈이 멀 수도 있으므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서 펭귄을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세인트 킬다 비치에 나타나는 펭귄은 '페어리 펭귄(fairy penguin)'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종으로 키가 최대 33cm 밖에 안되며, 낮에는 바다에 나가서 사냥도 하고 놀다가 밤이 되면 뭍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아기 펭귄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크기에 아장아장 걷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자원봉사자들이 비춰주는 빨간 불빛



펭귄이 출몰하는 지역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상시 근무하며 여행객들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지, 펭귄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고 있으며, 관람객이 보기 편하게 펭귄에게 안전한 빨간색 불빛으로 펭귄이 나타는 곳을 비춰주기도 한다.



LRG_DSC00154.JPG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펭귄




도시를 바라보며 서 있는 펭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지구사랑을 앞장서 실천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얼마 전 TV를 통해 보도되었던 플라스틱 빨대로 고통받다가 구조된 거북이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단순히 펭귄을 구경하러 왔다가, 신기해서 사진 찍다가, 마지막엔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공존하며 서로의 소중한 삶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니. 나에게 이 곳은 단순히 펭귄을 만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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