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소소한 행복

멜버른에 일요일에 머무른다면 꼭 가봐야 할 곳

by 프리쏘울


밤 새 내린 비가 그칠랑 말랑, 잔뜩 구름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혹시 오늘 장이 서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스러운 아침이었다. 한 여름이지만 비가 내린 후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 날씨에 긴팔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세인트 킬다 비치로 향했다. 세인트킬다 비치 옆, The Esplanade 거리에 가까워오자 사람냄새가 폴폴 나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줄 지어선 다양하고 개성있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 St. Kilda Esplanade Market이다.



시장은 Hotel Esplanade 맞은편에서 시작해 루나파크까지 약 500m의 거리. 비가 온 직후라 그런지 드문드문 안 나온 상인들의 빈자리가 보였다. 시장 입구에는 4~5종류의 푸드트럭들이 있어 바로 앞 해변가에 들고 가 먹었어도 좋았을 법 했지만, 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호주는 건조한 기후라 햇빛이 나냐 안나냐에 따라 온도변화가 극심하니 호주여행시엔 4계절 옷을 다 챙겨야 한다.


C0005_Moment.jpg 시장의 시작을 알리는 푸드트럭


500m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 안에 호주를 대표하는 특산물에서부터 수공예로 제작한 악세사리, 그림 그리는 예술가, 먹거리, 공예품 등 개성있고 다양한 품목들이 넘쳐났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산지에서 직접 가지고 나와 중간 유통마진이 없는 것,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개성있는 수공예품 등은 과감히 지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지라 어떤 물건이 나의 이목을 사로잡을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얼마 걷지 않아 나는 주방용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다들 안다는 '캄포도마'를 파는 곳 앞에 멈춰섰다.



C0016_Moment.jpg 캄포도마의 향기를 맡아보고 있는 한 손님.


캄포도마는 호주에서 많이 재배되는 캄포나무로 만든 도마인데, 캄포나무 자체에 살균 능력이 있어서 도마로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도마 1개에 나무 조각 여러개를 이어붙이거나 하지 않고, 도마 1개가 나무 1판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통도마'이다. 꽤나 묵직한 무게에 캄포나무 특유의 향기가 솔솔 난다. 한국의 백화점에서는 고급 도마로 분류되어 큰 사이즈의 도마는 수십만원을 호가 한다고 하니, 캄포도마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호주에 와서 사가는 이른바 '쇼핑리스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되어 끝이 까맣게 슬어버린 나무도마를 아직도 사용하고 계신 엄마 생각이 나 크고 넉넉한 크기의 도마를 한 개 구입했다. 뭐하러 이런 걸 사왔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좋아하실 엄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으로 내 발걸음이 멈춰 선 곳은 산지에서 가져온 꿀. 호주와 네델란드의 꿀이 유명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곳에서는 마누카꿀은 물론이고 레몬, 시나몬, 생강 등을 믹스한 꿀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레몬차, 생강차처럼 따뜻한 차로 마실 수 있는데 안 좋은 설탕 대신 자연산 벌꿀로 만들었다니 이 역시 나의 장바구니 속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꿀을 판매하는 아저씨는 껄껄껄 인심 좋게 이것도 맛보고 저것도 맛보라고 권유하시고, 지불이 끝나자 본인의 핸드폰으로 사진까지 같이 찍자고 하셨다.


C0023_Moment.jpg 긴 막대에 꿀을 묻혀 시식할 수 있게 해준다.



수공예품이나 미술작품 역시 독특하고 개성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공예품은 유리로 만든 귀걸이였다.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을 받는 방향이 달라져 컬러도 변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내가 본 악세사리류 중 가장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웠다. 1개에 20불, 3개에 50불이었는데 그 3개를 고르기도 너무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9개쯤 고르고 싶었다. 계산을 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거울을 달라하고 바로 착용해보니 주변 사람들도 다같이 내가 착용한 모습을 둘러본다. 나의 모습은 과연 아저씨의 판매에 도움이 된 것일까 아니면 해만 끼쳤을까.



C0019_Moment.jpg 실제로 보면 빛을 받아 반짝거려 너무 예쁘다.



마지막으로 내 발길을 붙잡은 곳은 헤나샵. 작은 건 5불 부터 시작인데 나름 복잡한 도안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도 전문가의 기술로 그리는데 1~2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속기간은 1~2주 정도이고 서서히 흐려지면서 자연스레 지워지니 휴가 기분을 내기 그만이다.


C0021_Moment.jpg 단 돈 5불에 2주 동안 문신을 가질 수 있다.


다음에 멜버른에 갔을 때 일요일이 끼어있다면 다시 이 곳에 들르고 싶다. 그리고 그 때는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드문드문 나오지 않은 상인들의 빈자리 없이, 꽉 찬 선데이마켓에서 푸드트럭의 음식을 들고 해변가에서 피크닉도 즐기고, 밤이 되면 주변의 힙한 바에서 술도 한 잔 하는 꽉 찬 일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20181230_135654.jpg 루나파크가 보이면 시장은 끝이 난다.











































20181230_135654.jpg 루나파크가 보이면 시장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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