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쌤 Apr 23. 2020

4) 캐나다 가서 성공할지 점 보러 가자!

학원을 급히 정리하느라 다음 주인을 찾지 못해 권리금도 못 받고 그냥 폐업. 

물건들은 싸게 팔거나 기증하고 다 정리하고 나니 남은 돈이 얼마 안 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송별회. 

내 40여 년의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땐 정말 가면 뼈를 묻으리 하는 맘으로 다신 안 올 것처럼 비장했다. 

날 아끼는 외숙모께선, 

“외국 나갔다 오면 오래 못 살아. 봐라! 니 외삼촌 사우디에서 더운 바람 많이 마시고 와서 일찍 돌아가셨잖냐” 

하시며, 가지 말라고 하셨다. 

캐나다행 결정을 하고 나서 우선 동생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설득이 제일 어려웠던 사람은 남편, 그리고 제일 말씀드리기 죄송한 분은 시어머니였다. 

남편은 내가 처음으로 강하게 주장하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못 막겠구나 싶었는지.. 

한국 며느리로는 굉장히 운이 좋게 난 시집살이를 모르고 살았다. 

늘 내편이 되어주셨지만, 막상 아들을 놓고 간다는데 좋아할 시어머니가 있겠는가? 

남편과 어렵사리 말을 꺼내니, 

“너도 너 하고 싶은 거 해봐야지. 너 힘들었던 거 다 안다. 그 대신 니 남편 얼른 데려가라” 

하시면서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들려주신 어머님의 꿈.

어려서부터 가수가 되고 싶어서 친구 **와 서울 야반도주를 계획한 바로 다음날.

집안에서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이 결정됨을 알게 되셨다.

부모님께 잡혀서 서울도 못가고, 결혼해 애낳고 살면서도 그게 항상 속상해 남편 원망 많이 하셨다고.

노인정에서 실력발휘 하시던 어머님의 멋진 노래솜씨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어느날 한 지인이 날 태우고 어디론가 달린다. 

물어보니 “아는 점집에 가서 캐나다 가면 성공할지 물어보자”라고 했다.

 “내려줘. 난 모른 채 가고 싶어. 가서 성공 아니면 실패 둘 중에 하난데, 점쟁이가 성공한다는 말 해주면 좋겠지만 실패하고 온다고 하면 내가 어떤 맘으로 캐나다 가겠어? 싫어 ‘ 

하며 설득 끝에 가지 않고 밥만 먹고 헤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걱정을 했다. 

살가운 성격이 아닌 내가 유치원 영어교사로 취업한다 했을 때, 

나이 서른에 간호대 간다 했을 때,

나이 마흔 넘어 연고도 없는 외국 땅에 간다고 하니 더더욱. 

남들이 성공확률이 20프로라고 하면, 난 50프로라고 한다. 

되는 거 아니면 안 되는 거 둘 중의 하나 아닌가? 

내가 미스코리아가 될 확률, 캐나다 가서 성공할 확률, 세계일주를 할 확률 등등 

뭐든 안 해본 상태에서 안 될 거라는 판단으로 내 성공의지를 깍아내리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누군가가 저 주전자가 뜨거울 거니 만지지 말라고 한다면, 남편은 만지지 않는다. 

난 내가 만져서 확인한다. 

내 지론은 이거다.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하고 후회하자!

안 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니까. 


난 그렇게 캐나다를 내가 만져서 확인하려고 2014년 3월 25일 드디어 한국을 떠났다!   

작가의 이전글 3) 3월 입국, 5월 취업, 9월 둘째 무상교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