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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쌤 Apr 24. 2020

5) 캐나다 주부들은 다 이렇게 편하게 살아?

엄청난 길치인 나는 인천공항에서도 길을 잃고, 6학년 딸에게 의지해 겨우 비행기를 탔다. 

토론토에서 핼리팩스로 오는 작은 비행기가 불안하긴 했지만, 잘 도착했다.

    

깜깜한 밤, 큰딸이 있는 홈스테이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다본 핼리팩스는 추웠고, 어둡고, 허허벌판만 보이던 시골 그 자체.    


셋이 살 집을 한국에서 알아보기 힘들어서, 비용을 더 드리고 우리까지 며칠만 더 홈스테이 집에 있도록 양해를 받았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snow storm(눈 폭풍), 캐나다에 온 게 실감 났다.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제설차량(snow plow)이 밤새도록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바로바로 치웠다.

며칠간 눈 때문에 꼼짝 못 하고 집에 있다 보니 노부부의 하루가 잘 보였다.    

일단, 아침엔 간단히 먹고 싶은 각자의 먹거리를 각. 자. 가. 알아서 챙겨 먹고, 그릇은 식기세척기에 본인이 정리하고, 각자의 아이패드로 게임.    

점심도 최대한 간단한 끼니로 때운다.    

저녁은 고기를 굽거나, 냉동피자를 덥히거나, 테이크아웃 음식을 사 와서 먹는다.     


설거지는 딱 한번, 저녁에 그릇에 다 모아지면 식기 세척기를 돌리고, 할머니는 부엌에서 소요하는 시간이 하루에 30분도 안되어 보였다.    

일단, 음식이 굉장히 간단하고, 할아버지께서 반절 이상을 하셨다.    


이제 막 한국에서 온 보수적인 가정의 가사노동자가 보기엔 너무 편해 보였다.    

한국음식 자체가 손이 많이 가고, 나름 건강식을 요리한다는 이유로 난 일이 많았었다.    

“뭐야, 캐나다 주부는 다 이렇게 살아? 설거지 하루 한번, 그것도 기계가. 할아버지도 요리 많이 하시네”     

그때의 나에겐 적잖은 문화충격이었다.    


며칠 후, 할머니의 생일날까지 집을 못 구한 나는 죄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딸의 가족이 와서 자야 하는데, 우리가 아직 나가지 않아서 그들이 불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의도하지 않은 생일 축하파티의 게스트가 되었다.     

할머니 댁에서 파티를 했으니.    

수 십 명의 손님들 속에서 딸은 엄마와 한껏 멋을 내고 즐기느라 바쁜데, 남편(할머니의 사위)은 고기 굽고, 설거지하고 음식 써빙까지 부엌에서 나오질 못했다.     


우리나라 명절에 또는 시댁 식구들 생일날이면 부엌에 서있는 사람은 누구던가?     

나야 편한 며느리였고, 남편이 자기 구역 청소는 하는 사람이었지만, 맞벌이하며 가사노동, 특히 육아가 완전히 50대 50이 되지 않는 상황이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내가 굳이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고 싶었는데, 며칠 만에 나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오고 있던 인간 부족들과 한 공간에 있게 된 것이다.

  

공원에 나가면, 오후 서 너 시에 아빠들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다.     

엄마들이 같이 있기도 했지만, 아빠들만 온 가정도 여럿이다.    

유치원 차량 운행을 하지 않으니, 학부형들이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원으로 직접 데려오고, 데려간다.    

많은 수의 아빠들이 혼자 또는 부인과 함께 이 일에 동참한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연락하면, 아빠도 조퇴하고 원으로 와준다.     

그 대낮에 공원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유치원에 와 준 아빠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남자들은 백수인가?”    


한국의 아빠들은 너무 바쁘다.     

공무원, 외국계 회사가 아니라면 칼퇴근은 꿈도 못 꾸고, 대부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육아에 참여하기가 사회구조적으로 힘들다.    

하고 싶어도, 직장 눈치가 보인다.    

육아휴직이 있지만,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개인의 행복추구, 권리 추구가 회사와 집단의 이익에 우선한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조퇴할 수 있고,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시간만큼 유급 병가를 낼 수 있다 (회사의 기준일을 초과하면, 무급휴가를 쓰기도 한다.)    


조직보다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회사보다 가정이 먼저인 것이다.    


난 내가 찾던 판을 잘 찾았다.     

그래, 그럼 일단 성공인 걸로!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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