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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쌤 Apr 26. 2020

6) 이사 오고 싶으면 잔고증명 해!

핼리팩스에 도착해서 할 게 너무도 많았다.

유치원 취업에 꼭 필요한 범죄기록 조회, First-Aid 신청 및 수강, 아동학대 기록 조회.

이것들이 준비될 동안에 구인중인 원에 이메일 보내기, 그리고 집 구하기.   

 

약속드린 날짜를 넘기고도 집은 구하기가 힘들었다. 

현지에서 집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있었지만, 비용 절약을 위해 kijiji(키지지)를 통해서 직접 시도했다.

Kijiji는 우리나라의 교차로 같은 것으로, 렌트 구하기, 중고물품, 중고차, 친구 찾기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사이트다.

사진은 렌트 정보가 나온 것으로, 화면 왼쪽에 원하는 정보를 넣어서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들만 나오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핼리팩스, 단기 렌트, 1.000불까지만, 방은 하나, 애완동물 허용 안 되는, 난방비 포함 등등   

 

큰아이 홈스테이에 우리가 빈대 붙은 형태라, 잠자기, 식사하기, 빨래하기, 어느 것 하나도 맘이 편하지 않았다.

두 번쯤 친절하게 부탁을 받아주시더니,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너의 사정을 많이 봐줬고, 우리가 불편하니 며칠 후까진 나가주면 좋겠다.”

라고 최후통첩을 하셨다. 

여태까지 나의 사정으로 봐주신 것만으로 감사해서 더 폭풍 검색!

다행히 다운타운에 750불,  3개월짜리, 침실 하나인 작은 sublet 아파트를 찾았다.

sublet은 세입자가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이사 나가야 할 때, 계속 이어서 살 사람을 찾는 것을 말한다.

세입자와 이사 조건이 맞아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아파트 소유 회사가 sublet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했다.

담당자를 만나보니, 내가 외국인이고, 은행 거래 내역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신용상태를 알 수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핼리팩스의 그 파란 하늘이 내겐 잿빛이 되는 순간.

홈스테이 집에선 나가야 하고, 겨우 구한 집은 거절당하게 생기고, 긴 하소연 끝에 내린 회사의 결론은 잔고증명.

내가 계약 기간 동안 월세를 잘 낼 사람인 걸 증명하라고 했다. 

다행히 일하기 전까지의 생활비로 가져온 천만 원 정도의 잔고를 증명하고 이사 허락이 떨어졌다.    

 

지금이야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그땐 처음이라 맘이 많이 상했었다.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된,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고정 수입도 없는,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보증인을 세우라고 하거나, 아주 심한 경우 일 년치 렌트비를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날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하니, 같이 속상했던 남편은,

“남편이 GM대우 차장이라고 하지 그랬어?”하며 화를 내었다. 

우리 둘 다 그땐 몰랐다.

한국에서 20년 다닌 회사의 차장인 것도, 고학력인 것도, 한국에서 영어 조금 하다 온 게, 생판 남의 땅에선 먹히지 않는다 라는 것을.     


약속된 날짜에 애들과 무거운 짐가방들을 택시와 할아버지 차에 싣고 이사를 갔다.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건물 관리인이 우리를 막았다.

“오늘은 안 돼. 너의 이삿날은 내일이야.” 

할아버지도 이미 가셨고, 분명히 약속한 날에 왔는데, 무슨 규정이 생긴 건지 오늘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완강한 반대에 밀려, 난 다시 택시를 부르고, 기사의 도움으로 근거리에 제일 싼 숙소로 가서 아이들과 쉬고 있으려니 전화가 왔다.

“내가 회사와 얘기를 잘했어. 너희들 오늘 이사 들어와도 된대.”

아까 내가 같이 있을 때 전화해 줄 것이지, 나온 지 한 시간 만에 다시 오라고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사정 얘기를 해서 숙박비는 환불받고, 다시 짐 옮기기.


짐 정리는 대충 하고, 기념으로 아이들과 근처 한인식당에 가서 외식을 했다.

하루가 유독 길었다.    

 

끝났으니 됐다!

그런데 지금 세어보니 6년 캐나다 살이의 5번 이사 중에 겨우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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