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비판

'스레드'에서의 논쟁을 기반으로

by 에밀리

최근 한 유저와 짧은 논쟁을 나눴다. 그는 페미니즘의 ‘진정한 이상형’이 존재한다는 듯, 특정 사조의 관점을 마치 교리처럼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이에 대해 “페미니즘은 단일한 흐름이 아니라 다양한 이론 전통의 집합”이라 비판하자 돌아온 반응은 의외로 단순했다.


“꼰대.”


그의 반박은 이것이 전부였다.


물론 인신공격은 논리의 부재를 가장 빠르게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스스로를 ‘고졸’이라고 소개하며 발언했다는 사실이다. 학력이 비판의 근거는 될 수 없지만, 최소한 사회학을 심화전공하며 젠더사회학·가족사회학·여성사회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웠던 나에게 이성적·학술적 반박을 제시하기 어려웠다는 불편함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선호하는 단일한 페미니즘만을 ‘정답’으로 제시해 놓고, 정작 그것이 왜 정답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 특유의 방어기제.


사실 그는 내가 비판했던 바로 그 오류를 반복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을 단일한 이상형으로 규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잘못된 페미니즘’으로 취급하는 태도 말이다. 이는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마치 롤스·노직·밀·프리드먼처럼 서로 다른 철학적 계보를 가진 학자들을 모두 “작은 정부 자유주의자”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단순화의 오류와 같다. 복잡한 사상 지도를 단일 잣대로 납작하게 만드는 순간, 이미 논의는 학술적 엄밀함을 잃어버린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접근 자체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전형이라는 점이다. 특정 남성의 관점에서 정의된 “이상형 페미니즘”(예컨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페미니즘만이 진짜이고 다른 흐름은 모두 변질되었다는 식의 논리에 여성들이 맞춰야 한다는 요구) 그것은 이론적 비판이 아니라, 젠더 권력의 작동 방식에 가깝다.


내가 제기한 질문은 단순했다.

왜 특정 페미니즘만 ‘올바른 페미니즘’이 되는가?
그 기준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을 말하는 사람의 젠더적 위치는 어디인가?


답을 내놓지 못하니, 그는 결국 논점이 아닌 ‘나’라는 사람에게 화살을 돌렸다. 여성/젠더사회학을 학부에서부터 배웠던 나를 비판하기보다는, “꼰대” 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맥락을 덮어버리는 방식. 이것은 지적 논쟁의 실패이자, 동시에 자신이 설정한 좁은 틀(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에 갇혀 있다는 고백에 가깝다.


페미니즘은 단일한 정답이 아니다. 여러 계보와 현실, 교차하는 억압과 권력의 지층을 탐구하는 사유의 장이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단 하나의 페미니즘만을 ‘진짜’로 선언하는 순간 비판은 사라지고 독단만 남는다.


논쟁을 마치며,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정말로 “꼰대”는 누구였을까?
이성, 논리, 합리성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그는 끝까지 인신공격으로 마무리했다.
그의 반응은 내 글을 증명해 준 셈이었다.


페미니즘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만을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비판이 아니라 권력의 행사다.


참조자료

(1) 특정 유저에게 '팩트와 가치판단의 구별'을 친절히 알려 주었던 자료 https://brunch.co.kr/@freevaccine/63

(2) 페미니즘을 하나의 ‘이상형’으로 부르는 오류에 대하여 https://brunch.co.kr/@freevaccine/107))미니즘을 하나의 ‘이상형’으로 부르는 오류에 대하여 페미니즘을 하나의 ‘이상형’으로 부르는 오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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