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가 말했다. "적당한 지점이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곁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었다. 온수기 엘이디엔 팔십 팔도라는 숫자가 보였다. 이 에센스도 구십도 초반이니 함께 어우러지면 너무 뜨겁지는 않지만 따뜻함은 조금 넘어서게 된다. 마시기 적당할 것 같다. 뜨겁기만 한 물을 준비한다면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나 호호 불어 조금씩 맛을 봐야 하기에 온전한 감상이 어려우리라. 반대로 너무 낮은 온도라면 오히려 본연의 맛이 살지 않게 된다.
그녀는 따스하게 예열된 잔에 에스프레소를 담고 따뜻한 물을 천천히 부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며 섞이는 커피와 온수. "자, 여기." 나지막한 말에 나는 잔을 받아 들었다.
따스한 커피가 혀와 입안을 감싸자, 이내 크레마와 오일이 주는 부드러움이 감각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상큼한 향이 비강을 지나 머리로 또 나의 생각 전체로 스며들어, 마치 남국의 산지에서 원두에 코를 대고 폐부 깊숙이까지 숨을 들이마시는 듯하다. 뭉근하고 따스한, 몸에 잘 붙는 온기. -열정만 넘쳐서 피하게 되지도, 또는 너무 냉철해서 감각이 마비돼 버리지 않는-조화로운 지점. 삶을 대하는 넓은 방식일지도.
잔을 든 채 목소리를 내었다. "좋아요. 오래 놓고 마실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