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고 스코어를 위하여_무림고수 K
나의 라이프 타임 베스트 스코어, 그러니까 주말골퍼 용어로 ‘라베’는 투 오버파인 74타다. 골프를 친 지 2년째 그 어느 따뜻한 봄날에 첫 싱글을 기록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라베로 남아있다. 양잔디 구장인 데다 전장이 길어 좋아라 자주 찾았던 몽베르cc의 북코스 블루티에서 낚은 기록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라운드를 했고, 첫 싱글이라 내가 밥을 샀으며 녀석들은 술이 불콰해져 “샷이 좋더라”느니 “오늘 쇼트게임이 좀 되더라”느니 떠벌이기도 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골프 역사에 기록될 만한 날이었으므로 당연히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음, 내가 생각해도 그날은 샷이 좋았고 쇼트 게임도 착착 붙었으며 운까지 따랐다. 블루티 플레이를 해서 드라이버 티 샷을 꽤 많이 했는데도 티 샷이 모두 살았다. 당시 라운드 당 OB를 3~4개씩 기록하던 때였으니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두어 번은 해저드 라인 근처에 골프볼이 떨어져서 세컨드 샷 치기가 매우 까다로웠는데, 이게 또 치면 홀 가까이 붙는 것이었다. 당시 미천한 구력으로 쇼트 게임이 좋을 수가 없었는데, 그날따라 정말 ‘그분이 오신’ 것이어서 치는 족족 볼이 홀 옆에 붙었다. 그렇게 실력과 운으로 당당히 투 오버 파로 게임을 끝냈다.
그 뒤로 74타는 열 번 정도 친 거 같다. 블루티에서 두세 번, 나머지가 화이트티 기록이다. 몇 번은 이제 라베를 깨는가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예를 들어 300cc 18번째 파5 홀에서 투 온을 해 ‘투 퍼트만 해도 라베구나’나 했는데, 웬걸 6~7미터 거리에서 쓰리 퍼트를 하는 바람에 또다시 74타를 치고 말았다. 주말골퍼 중에도 언더파를 치는 이들이 꽤 많은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주말골퍼 입장에서는 74타만 해도 쉬운 기록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골프를 시작한 첫해에 연습을 진짜 무던히도 했다. 신문기자로 일하던 때였는데, 주중에는 일이 끝나면 잠시라도 집 앞 골프 연습장에 들렸다. 또 주말에는 골프장에서 2~3시간씩 강훈련을 했다. 나는 워낙에 운동을 즐기는 타입이기도 하다. 한 번 운동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기질이 있다. 그렇게 골프 스윙이 잡히자마자 비거리가 꽤 많이 나왔다. 그래서 더 재미가 붙었다. '비거리만 따지면 최소 상위 1%'라는 자부심 같은 것도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특히나 “골프에서 스윙은 집을 지을 때 토대 같은 것”이라고 판단해 스윙을 만드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그 결과로 골프 시작 채 2년이 안돼 첫 싱글이자 라베를 기록한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10년이 넘도록 74타 라베를 아직도 깨지 못하고 있는 걸까. 첫째 나는 라베에 대한 욕심이 그다지 크지가 않다. 그게 그렇게 매달릴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이글을 스무 번 넘게 했는데 그것 역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직 홀인원은 하지 못했는데 만약 운 좋게 하게 되다라도 대단히 기쁠 거 같지도 않다. 골프는 그냥 즐기면 되는 영역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주말골퍼이자 스포츠인으로 샷을 정성껏 갈고닦아서 멋진 골프 플레이만 할 수 있다면, 타수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티칭 프로들이 내 라베가 74타라고 하면 못내 아쉬워한다. 샷은 충분히 언더파를 칠 수 있는데 왜 아직도 투 오버파에 머물러 있는 거냐면서. 그런데 나는 스스로 언더파는 머지않은 어느 날 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스윙이 퇴보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 한 언더파 스코어는 불현듯 벼락처럼 찾아올 거라고 기대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누구든 한 번쯤 들어봤을 게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묘비명 중 하나일 거다. 스스로 “셰익스피어가 나보다 훨씬 크지만 나는 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다”라고 호언했던 버나드 쇼. 신랄하고도 예리한 풍자, 그리고 촌철살인의 문장을 남긴,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 그의 묘비명을 두고 ‘오래 살다 보면’이 맞는 해석이라느니 ‘우물쭈물 같은 단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둥 말들도 많은데, 나는 그게 그거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 묘비명을 나는 좋아한다.
내가 40대 중반을 막 넘어섰을 무렵이었을 거다. 어느 새벽, 춘천 인근의 한 골프장으로 차를 몰아가다가 양평 두물머리 풍광이 너무도 황홀해서 차를 세우고 한 참을 넋 놓고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안개 핀 강변과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늙어가는 비애’를 느꼈다. 그날 골프는 어떻게 쳤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대신, 라운드를 같이한 고교 친구들한테 넋두리 삼아 그 비애를 이야기했었다. 그때 녀석들은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하는 반응들만 보였다.
두물머리에 차를 세웠던 그때 그 순간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우물쭈물 살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을 줄곧 해왔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을 산다. 젊어지려는 욕심은 과거에 대한 미련에서 생겨난 것일 테다. “만약 내가 삼 십 년 전, 사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파우스트 박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순수 창작한 인물은 아니다. 15~16세기부터 전해 내려온 독일 전설 속 인물이다. 철학, 법학, 신학, 연금술까지 인간의 모든 지혜와 이성을 가졌지만 자신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 필멸의 운명인 인간은 본디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더라도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이 세상에 오래 머물다 보면 죽음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지금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매 순간을 라이프 베스트 타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1편 부터 같이 해요^^
https://brunch.co.kr/@freewill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