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무 빨리 가려는 자는 길을 잃는다"

인생은 마라톤_무림고수 K

by 무림고수 K

J가 골프를 시작한 지 이제 몇 달이 지났다. 사실 나는 십 수년 전 J와 같이 난생처음으로 골프연습장에 갔었다. 그때 나는 업무상 골프를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J에게 아주 예쁘고 비싼 골프화를 선물하고

그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때 J는 연습장을 딱 두 번 가고 만 걸로 기억한다. 그 뒤로 가끔씩 나는 J에게 골프를 해볼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필라테스나 요가를 하던 J는 그때마다 시큰둥했다. 골프에 푹 빠진 내가 못마땅했을 수도 있겠다. 이후로 나는 J에게 골프를 권하지 않았다. 어차피 ‘갈 길이 너무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다. 골프를 한 지 1개월쯤 되면 ‘손이 거칠어지다가 마침내 까졌다’고 나를 타박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골프 그립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인 투 아웃 스윙 궤도라는 게 무엇인지, 헤드 무게로 공을 친다는 게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등등을 귀찮게도 물어올 것이다. 조금 더 지나면 아이언과 드라이버는 치는 방법이 다른 건지,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 쇼트 게임이 왜 중요하다는 건지, 더 지나면 비거리 내는 비결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다가 첫 골프 라운드에서 그간의 인내와 고통을 100프로 보상받는 힐링의 느낌을 만끽할 것이다. “골프가 이토록 아름다운 운동이었던가”라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일 게다. 골프는 기본적으로 주말골퍼를 행복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저울에 올려놓고 골프의 무게를 단다면, 행복이 고통과 번뇌의 합보다 아주아주 조금 더 무게가 나갈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예상한 대로 J는 지금 타박과 절망과 고뇌, 그리고 아주 가끔씩만 번쩍이다 사라지는 그 희망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갈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골프 라운드를 나가면 아무래도 골프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주말골퍼이기 때문에 고민의 폭과 깊이는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다. “백스윙 길을 잃었다. 클럽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까먹었다”, “비거리가 난데없이 두 클럽이나 줄었다. 영문을 모르겠다”, “골프 유튜브 채널 십 수개를 구독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졌다” 식 한탄. “KLPGA 누구의 스윙을 따라 하다가 문득 깨달은 바 있다”, “아이언을 다운블로우로 강력하게 치는 방법을 드디어 알아냈다”, “너네 이제 다 죽었다. 몸통 스윙을 완전히 익혔거든” 같은 깨달음. “연습장에 이제는 안가. 가나 안 가나 필드에서 나오는 타수는 똑같거든”, “난 그냥 백돌이로 살래. 이번 생애에는 틀렸어” 등의 자포자기가 막다른 해탈의 경지까지.


그렇게 우리는 희비의 골프 쌍곡선을 타고 여태껏 달려왔다. 골프는 마라톤처럼 길게 내다봐야 하는 스포츠다. 3~4년 반짝 열심히 했다고 골프를 완성할 수 있는 천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백스윙과 다운스윙 궤도를 그어 콤비네이션으로 조합하면, 천문학적 경우의 수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쉬울 수가 있겠나.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어렵게 골프를 치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골프가 안될 때 점검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립과 어드레스, 스윙 플레인이다. 백스윙, 다운스윙 궤도는 클럽을 잡을 때마다 점검한다. 그게 어그러지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골프의 기본기라고 할 텐데, 그게 또 어떻게 보면 골프의 전부이기도 하겠다. 만약 골프의 기본이 잘못된 상태라면,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그건 곡괭이질이나 삽질하는 것만큼 골프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다. 그러다가 결국 달나라로 가게 될 수도 있겠다.


내가 다시 십 수년 전 골프를 처음 배울 당시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조건 1년간은 기본을 만드는데 진력할 거다. 마음 맞고 실력 좋은 티칭 프로한테 레슨을 꾸준히 받으면서 골프 기본기를 최대한 닦을 거다. 기초를 제대로 쌓아야 그 기초 위에서 골프 실력이 착착 붙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골프연습장이나 골프 라운드를 나가서 스윙의 기본조차 안돼 있는 주말골퍼들을 볼 때면 마음이 착잡할 뿐이다. 골프는 제대로 배워서 익히지 않으면 실력이 절대로 늘 수가 없는 운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대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지나치게 서두르지 말라. 너무 빨리 가려는 자는 길을 잃는다”고 말했다. 골프가 그렇고, 인생이 그럴 것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차곡차곡 길을 밟아 나가면 된다.



그렇게 살아도 고통과 고뇌의 파고는 끊임없이 다가온다. 기나 긴 마라톤을 뛰다 보면 ‘마라톤 월(Wall)’에 부딪치게 되는 것과 같다. 육체와 정신적 고통으로 더 이상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을 듯한 막막함. 힛 더 월(Hit the Wall)이다. 그렇다고 무릎을 꿇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까짓 장벽이 나타난다면 굳은 의지로 돌파해 나가자. 삼국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오관파천’(五關破天)이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적장들을 해치우며 다섯 개의 성곽을 파죽지세로 돌파하는 장면. 관우처럼 살자. 그게 인생을 사는 참맛일 거다.


J는 지금 당장 깨뜨려 넘어야 할 골프의 벽에 겹겹이 쌓여 있다. 주위의 주말골퍼 중에 이른바 ‘90(타수) 파(破)’를 못해 흥미를 잃어버리고 골프 클럽을 놓은 이들을 여럿 봐 왔다. 멀리 내다보고 기본을 지켜 준비하는 자만이 싱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지금 골프가 안된다고 좌절하지 마라. 고통을 인내하라. 그리고 돌파하라. J의 무운을 빈다.


1편부터 같이 해요^^

https://brunch.co.kr/@freewill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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