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응답하라, 까까머리 시절이여

넘어져도 일어나라_무림고수 K

by 무림고수 K

응답하라 1988의 시대,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초여름 어느 날 일이다. 당시 중소도시 춘천의 내 주위 또래들은 너나없이 에너지가 넘치는 천방지축 과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저녁식사 시간이 땡 치면 도시락을 5분이면 후다다닥 다 까먹고 번개같이 운동장으로 냅다 달려 나가곤 했다.


그날은 2학년 형들과 축구시합이 잡혀 있었다. 나는 까까머리 학창 시절에 누구 못지않게 빨리 뛰면서도 볼 드리블 감각이 있었으므로 축구, 남들보다 한참이나 더 빠른 구속으로 공을 뿌려댔으므로 야구에서 꽤나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그날 시합에서도 스트라이커 자리를 꿰찼던 듯싶다. 2학년 형들이 ‘야 인마, 1학년이 무슨 몸싸움이야’, 우리들은 ‘야 무시하고 볼에 집중해’ 등등 하던 그때에 단독 드리블 찬스가 났다. 누군가 후방에서 찔러준 공을 발끝으로 아주 감각적으로 가볍게 터치, 이내 전속력으로 상대 골문을 향해 비호처럼 돌진하던 바로 그 순간. 페널티 박스 앞까지 뛰쳐나온 2학년 형 골키퍼가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어 내민 채 공이 아니라 내 양쪽 발목을 향해 슬라이딩을 해온 것이다. 아뿔싸! 공중제비를 돌아 떨어지고 보니 안경은 십 미터쯤 밖으로 날아가 있고 입었던 체육복 바지는 무릎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뭐 당연히 파울 선언은 없었고 골은 넣지 못했다. 시합은 그렇게 끝났다.



운동장 옆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는데 친구 문석이가 “어라, 너 팔이 이상한데” 하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감각이 무뎌진 한쪽 팔을 들어 살펴보니 퉁퉁 부어 있었다. “그냥 삔 거 아닐까?” 했더니 “아니야, 부러진 거 같다. 병원에 가자” 하는 것이다. 녀석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더니 역시 골절, 무더운 여름 내 깁스 신세를 져야 했다.


언제부턴가 어깨가 불편했다. 스트레칭을 하는데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해서 1년에 한두 번이나 갈까 말까 하는 회사 헬스장에 모처럼 올라갔다. 뭉친 어깨를 스트레칭으로 풀겠다면서. 그런데 트레이너가 시키는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이것저것 검사를 마친 의사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어깨 상태가 이러저러하니 저러이러 치료를 최소 몇 달간은 꾸준히 받아야 나을까 말까 하다고 잔뜩 겁을 주었다.


이튿날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문석이한테 톡을 보냈다.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이러쿵저러쿵하니 저러쿵이러쿵 치료를 해야 한다더라고. 문석이는 지금 서울 강북에 있는 큰 신경외과 병원장이다. 고교 때 친구들은 나중에 꼭 무어가 돼야지 하는 이야기들을 서로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때 문석이도 마찬가지였는데, 십여 년이 흐른 뒤에 보니 부러진 팔을 알아본 그 따뜻한 선구안으로 운명처럼 의사가 돼 있었다.


문석이는 이틀간 나를 치료하고 나서 3개월간의 어깨운동 금지 및 금주 엄명을 내렸다. 그 바람에 골프연습장을 2개월 넘게 쉬었다. 아마도 골프를 시작한 뒤로 그렇게 장기간 연습장조차 한 번 안 간 것은 처음이지 싶다. “나중에 골프채를 다시 잡았을 때 스윙이 망가져 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사로 잡힌 채로. 아, 술은 무려 보름 가까이 참았는데, 비즈니스 네트워킹 일정들로 인해 3개월 금주는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어깨 상태가 90% 이상 컨디션으로 호전됐으므로 나는 문석이를 이제 ‘화타 원장’으로 부른다.


나의 이 장황한 부상 이야기와 다음에 이어지는 골프 역사상 가장 걸출한 두 영웅의 부상, 그리고 위기 극복 스토리는 사실 어떤 연관도 없기는 하다. 읽는 이가 혹여 앞서서 내 이야기를 잔뜩 펼쳐 놓은 것에 ‘네가 뭔데?’ 하는 불편한 심기가 발동되지 않기를 바랄 뿐. 고백건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스포츠 스타들은 운동만 잘하기보다는 서사를 갖춘 스타들인 경우가 많다. 벤 호건과 타이저 우즈가 꼭 그렇다.


호건은 1949년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버스와 정면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전신 골절을 포함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아내를 보호하려다 더 큰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이 위독할 지경이었다. 의사들은 호건이 다시 걷는 것조차 어려울 거라고 했고, 골프를 다시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고 16개월 만인 1950년 호건은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한다. 강인한 의지와 뼈를 깎는 재활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의 우승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귀 중 하나로 꼽힌다.


우즈는 2019년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당시 언론은 1950년 호건의 US오픈에 버금가는 역사적 복귀로 대서특필했다. 우즈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대회이자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대회로 꼽는 마스터스에서 11년 만에 우승한 것이었다. 그 간의 숱한 부상과 수술에 시달린 우즈가 황제로의 복귀를 알린 우승이었다. 전 세계 골프팬들의 찬사를 받을 만했다.


그리고 우즈는 2021년 운전 중에 차량이 전복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언론은 우즈가 골프를 다시 못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우즈는 다시 일어섰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재활을 거쳤을 것이다. 그는 사고 이후 14개월 만인 2022년에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복귀했다. 그리고 47위를 기록하며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때 황제의 모습을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저는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우즈는 언론 인터뷰에서 “스윙보다 18홀을 걷는 것이 나한테는 더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황제는 다리가 불편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대중에 보여주기가 싫었을 것도 같다. 그런데 내가 그때 거기에 있어서 “왜 골프를 계속하는 것인가”를 물었다면 우즈는 지체 없이 “골프가 나의 전부”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때 우즈의 마스터스 재등장이 골프 사상 가장 감동적인 복귀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여러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인생은 그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겠다. 여태껏 숱한 어려움을 때로는 용기로, 때로는 슬기로 버티고 헤치며 살아왔다. 물론 앞으로도 더 큰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올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호건과 우즈는 사고 이후 각각 16개월, 14개월 만에 골프 투어에 복귀했다. 호건은 “하루만 골프를 안 쳐도 스스로가 안다”고 말했었다. 나 같은 주말골퍼조차도 2개월의 골프연습 공백을 우려했는데, 호건과 우즈는 오죽했으랴. 불멸의 골프 영웅들임에 틀림없다.


아, 화타 문석 선생한테 치료를 받은 한 달여쯤 돼서 “내 어깨가 90프로 이상 컨디션으로 올라왔으니 빨리 100프로 상태로 만들어 달라”고 독촉을 했다. 화타 선생은 우리의 몸은 이제 더 이상 고교시절 그때 그 컨디션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우문현답했다. 서글플 뿐이다. 응답하라, 까까머리 그 시절이여!


1편부터 같이 읽어요^^

https://brunch.co.kr/@freewill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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