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중요한 자신감_무림고수 K
춘천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나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 중에 강원도 모처의 산과 강과 들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에 꽂혔었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 있다. … …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춘천에 가면 맛보아야 할 음식으로 보통 닭갈비와 막국수를 꼽는다. 나한테 양자택일 하라면 무조건 막국수다. 그 슴슴한 맛을 제대로 구현해 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막국수 맛집에 가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 대목을 벽에 걸어놓은 곳들이 있다. 어쩌면 이렇게 문장이 맛깔스러울까. 춘천에서는 막국수에 설탕을 한 두 스푼 뿌려 먹는데,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이란 표현이 그와 같이 아주 달달하다.
여기서 주말골퍼의 눈으로 문장을 재해석해 보자. 음, 백돌이들이 좋아할 문장 같지는 않다. 고수들은 개울을 넘겨 공을 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하수들은 워터 해저드가 공포 그 자체다. 아일랜드 파3 홀이 나와도 고수들은 평정심을 갖고 샷을 한다. 하수들은? 당기고 밀고 아주 난리가 나서 멀쩡한 공을 수장시키기 일쑤다.
고수들은 티 샷을 하고 나면 대개 드넓은 벌판을 걷는다. 하수들한테 그 드넓다는 벌판은 너무나 협소한 것이어서 산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허리쯤으로 날아간 공이 굴러 내려왔을 법도 한데 가보면 또 내려온 경우는 거의 없어서 메밀밭 같은 수풀을 아이언으로 헤집고 다녀야 한다. 이때 캐디가 꼭 한마디 거든다. “회원님, 조심하세요. 요즘 뱀 많아요.” 딴에는 생각해서 한 말일 텐데 백돌이들한테는 아주 염장을 지르는 말로 들린다.
고수들은 이미 그린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버디 퍼트 할 생각에 벌써부터 만면에 흐뭇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듯하다. 백돌이만 산허리 메밀밭에 묶여 있는 신세다. 뱀도 싫고 자신도 싫어진다. 헐레벌떡 그린으로 뛰어가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 이것은 백돌이 시절 나의 경험담을 토대로 쓴 것이니 ‘무슨 독설이고 망발이냐’고 혹여 열받는 분이 없길 바란다.
백돌이, 주말골퍼인 나에겐 무척이나 정감 어린 말이다. 나 역시도 어렵사리 ‘깨백’을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럼 과거 백돌이였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물론 스윙이 180도 달라졌다. (음, 스윙을 만들기 전에 백돌이 신세를 면하겠다? 언감생심,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꺼풀 더 들어가 이야기하자면 내 스윙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생겼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백돌이는 연습장과 필드에서의 스윙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습장에서는 피니시도 척 넘어가는 그럴듯한 스윙을 하는데 정작 필드에 나가 동영상을 찍어보면 ‘오징어가 흐물거리는’ 반대로 ‘로봇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것 같은 스윙을 하는 저 흉측한 몰골이 정녕 나란 말인가 한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수는? 대부분 스윙에 별 차이가 없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스윙을 탄탄히 다졌으므로 필드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시원시원하게 스윙을 한다. 그게 싱글 플레이어다.
조금 더 미묘한 측면의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처음 가는 골프장은 낯선 기대감이랄까 셀렘이 더 크지만, 나는 대개의 경우 타수가 2~3개는 더 나오는 거 같다. 뭐랄까, 나 자신을 100프로 믿고 스윙하기가 어렵달까. 나는 골프장을 한 번 가면 홀의 특징과 생김, 지형지물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래서 같은 골프장에 다시 간다면 이전의 라운드 경험을 살려 나름 전략적 플레이를 한다. 예를 들어 도그렉 블라인드 홀이 나왔다고 치자. 여러 번 간 골프장이라면 어떤 각도로 얼마만큼 질러 쳐야 할지 확신을 갖고 플레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간 골프장이라면 캐디와 동반자가 백 번 설명을 해줘도 눈으로 보지 않은 이상 확신을 가지고 샷을 하기 힘들다. 그런 주저함이 스윙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오고 그게 타수로 나타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미묘한 자신감의 차이가 아주 다른 샷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차고 넘친다. 나는 6번 아이언으로 캐리 170미터를 본다. 예를 들어 170미터 파3 티 샷과 같은 거리의 파5 세컨드 샷 중에 어느 것이 쉬울까. 생각할 것도 없이 후자다. 거리가 10미터 덜 가든 더 가든, 좌우로 10미터 정도 휘어지든 말든 크게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근데 파3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벙커에 들어갈 수도 있고, 해저드에 빠질 수도 있다. 부담감이 클수록 자기 신뢰는 떨어진다. 자기 신뢰가 낮아지면 샷 정확도도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골프를 멘털 게임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노래들이 있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My Way)’도 그중 하나다. 이런 대목이 있다. 아, 내 의역이니 그러려니 하시라! ‘넌 뭘 위해 사나, 넌 도대체 뭐냐(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자기 확신이 없다면, 넌 그냥 껍데기일 뿐(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골프클럽을 들고 필드에 서면 결국 나 혼자 뿐이다. 때론 바람도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천둥이 치고 비가 뿌릴 수도 있다. 높은 벙커도 깊은 워터 해저드도 도사리고 있다. 이 고난과 역경은 골퍼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스스로를 믿고 샷을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누가 나 대신 클럽을 휘둘러 공을 쳐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게 바로 골프다. 인생도 꼭 그와 같을 거다. 토마스 에디슨은 “자신감은 성공으로 이끄는 제1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믿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하므로 인생은 어차피 ‘마이 웨이’다. 독고다이 앞에 언젠가 봄꽃도 필 것이고, 청명한 가을하늘도 펼쳐질 테니까 스스로를 믿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면 된다.
1편부터 같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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