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또 반복...언제나 중요한 연습_무림고수 K
내 고등학교 친구 승공이는 3년 전에야 골프를 시작했다. 늦깎이 주말골퍼인 셈인데, 벌써 싱글 타수를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기록한 실력자다. 늦게 시작한 만큼, 고교 동기동창들끼리 만든 골프 단톡방에 있는 30여 명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 연습량이 어마어마했다. 거의 매일같이 2~3시간씩 연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골프 라운드 횟수도 어마무시했다. 어깨가 아프고 엘보도 왔다고 하면서도 골프클럽을 손에서 놓칠 않았다. 키 185센티미터로 기골이 장대한 그는 찬바람이 뺨을 에는 영하의 한파에도 “하나도 안 춥다”며 라운드를 나가는 열정파다. 서리가 새하얗게 내린 페어웨이, 잔설이 두툼한 러프 사진을 단톡방에 올린 건 지금까지 고교 친구 중에 그가 유일하다.
기업에서 해외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진규는 업무상 필요와 해외 체류 및 출장 기회가 많았던 덕에 친구들 중에 가장 빠른 30대 초반에 골프를 시작했다. 그보다 한 두 해 정도 늦게 골프에 발을 들인 게 대학병원 교수로 일하는 정균이다. 이 둘이 아마도 친구들 중에 가장 빨리 싱글을 기록했던 듯싶다. 특히 정균이는 몇 년 전 2언더파 스코어 카드를 보란 듯이 단톡방에 올린 적도 있다.
이들을 따라서 나머지가 줄줄이 골프의 세계로 들어갔다. 나이 40대 초반까지는 친구들끼리 모여 한 차에다 캐디백을 싣고 서울 이곳저곳 또는 근교의 ‘거리가 길고 시설이 좋다’는 인도어 연습장을 찾아다니고는 했다. ‘누가 멀리 치느니, 스윙 폼이 좋으니’ 해 가면서. 우리끼리 골프 라운드를 자주 나가기에는 실력이 달렸고 주머니 사정도 썩 좋지 않던 때다. 당시는 지금처럼 너나없이 라운드를 나갈 정도로 골프가 대중화되지도 않았었다.
40대 중반이 되자 골프 단톡방이 시끄러워졌다. 저마다 연습장에 가면 스윙 동영상을 올렸고, 친구들끼리 저녁에 스크린 골프라도 치면 이게 술을 먹는 건지 골프를 치는 건지 그런 사진들이 올라왔다. 각자 필드에 나가면 골프장 풍광을 찍은 사진을 올렸고, 막판에 스코어 카드가 올라왔다. 물론 녀석들은 잘 쳤을 때만 스코어를 자랑했다. 친구들끼리의 라운드는 특히나 주목도가 엄청 높아서, 30분이 멀다 하고 각자의 타수가 단톡방에 딱딱 찍히는 사실상의 실시간 중계 상황까지 벌어졌다.
여하튼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백돌이 신세를 면하고 보기 플레이어가 되더니 지금은 다수가 안정적 80대 초중반 주말골퍼들이 됐다. 구력이 쌓이면 실력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아, 친구 용일이는 언젠가 “골프에 쓴 돈이 차 한 대 값”이라고 했다. 그 돈이면 매번 싱글을 쳐야 마땅할 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뭐, 사실 그런 주말골퍼들이 어디 한 두 명인가. 그게 바로 골프다. 아 맞는다, 몇 년 전 용일이는 친구들과의 라운드에서 샷 이글까지 만들어내며 에누리 없는 첫 싱글을 기록하는 역사적인 날을 맞기도 했다.
이런 선수들끼리 분기에 한 번씩이나 춘계 라운드, 하계 라운드 식으로 단체 골프행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아주 난리가 난다. 보통 3~4개 팀이 꾸려지는데 실력에 따라 A, B, C 팀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이전 라운드에서 싱글을 친 선수들이야 시드를 받아 A팀이 되는데, 그 외에 A팀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눈치 싸움이 아주 가관인 것이다. 이 같은 타수 욕심과 자기 자랑이 겉멋을 불러서 7~8년 전에는 급기야 우승 트로피까지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사업을 하는 기창이가 2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찬란한 금자탑을 쌓고 라운드 뒤풀이 술자리에서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린 채 호방하게도 골프회 회장직을 수락한 일도 있었다.
고교친구들의 이러한 골프 이력과 골프 단톡방, 술자리에서 오간 그간의 정보 및 이야기들을 체계 없이 종합분석 했을 때, 단톡방의 평균 타수가 100개 안팎이었을 때 우리들의 주 연습 횟수는 3.5회, 90개였을 때 2.5회, 80대 초중반인 지금은 1.5회 정도로 추산된다.
대한민국 주말골퍼들은 왜 이토록 골프에 빠져드는가? 그토록 골프에 빠졌던 경험을 가진 주말골퍼인 내가, 역시 주말골퍼인 내 고교친구들 같은 이들 다수에 빙의해 그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하자면 이런 거 아닐까 싶다.
먼저 골프는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준다. 주말골퍼들은 보통 회사와 일, 그리고 가정 외에 다른 세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 중간지대 어디쯤 골프가 있을 테다. 골프는 누가 뭐래도 사색의 스포츠다. 사색은 곧 나에게로의 몰입이다. 골프연습장에 간다면 연습하는 시간 전체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나와 골프볼, 그 사이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주말 라운드를 위해 1시간 넘게 조용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혼자 운전해 골프장을 찾는다고 치자. 그런 나 혼자만의 공간, 나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이 우리 주말골퍼들에게 주어졌던가?
둘째, 앞선 이유와는 다소 역설적이나 골프는 일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즈니스 골프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최소 어느 정도는 무장해제된 필드라는 특수공간에서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상대를 만나고 소통한다. 골프는 골프로만 끝나지 않는다. 새벽에 만나 라운드를 돌고 점심식사까지 같이한다면 동반자와 5~6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우리는 그때 골프 말고도 일에 대해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이른바 비즈니스 네트워킹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만 해도 해마다 두 세번쯤 골프 라운드를 같이하는 팀들이 있다. 유대와 친목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재미 요소다. 어떤 이들은 골프를 신이 내린 가장 완벽한 스포츠라고 한다. 스포츠적 요소도, 게임적 요소도 다 들어가 있는 게 골프다. 스포츠라면 종목을 가지리 않고 즐겼던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주말골퍼들이 즐기는 내기 골프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라운드를 돌고 사우나 뒤 노곤해져서는 점심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곁들였다고 치자. 대리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안하게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주중에 업무 스트레스가 쌓였다면 그걸 눈 녹듯 녹여주는 위안과 위로의 힘이 골프에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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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무림고수 K의 골프이야기' 1편부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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