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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n 02. 2020

4-06. 천박한 과학주의  

벤담과 밀을 비판한 니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니체는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도 비판했다. 비판의 주요 요지는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이다. 그 근거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공리주의는 잘못된 과학주의에 기반한다. 공리주의는 대표적인 결과 중심 이론이다. 행위의 결과를 예측해 그것의 이익/손해를 따져서 그 유용성을 판단하겠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과거에 발생한 사건의 득실을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지금 선택하려는 문제, 아직 결과를 알지 못하는 사건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느냐는 말이다.


공리주의자가 사건의 미래를 예측하는 논리에는 과학적 인과론이 전제한다. 내가 지금 선택하려는 사건 A가 원인이 되어 결과 B가 도출될 것이라는 판단은 지극히 인과론적이다. 하지만 니체는 기본적으로 과학주의와 인과론을 수용하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니체의 기본 입장이다. 따라서 지금 나의 선택 A는 결론 B를 도출시킬 수도 있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의 선택 A는 결과 C를 생성시킬 수도 있으며, 따라서 결과를 일관되게 예상할 수 없다는 게 니체의 생각이다.


둘째, 공리주의는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를 저지른다. 공리주의의 목적은 무엇이 선하고 정의롭고 유용한 판단인지를 가리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A B C 3가지인데 그 중 무엇을 택하면 좋을지 판단 중이라고 가정하자. 공리주의자는 A B C의 최종 결과를 예측하여 각각의 유용성을 계산할 것이다.


그런데 공리주의자는 현재 A B C 중 무엇이 유용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자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공리주의자가 행하는 작업은, 각 선택의 유용함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큰 유용함을 택하기 위해 각 선택의 유용성을 예측하여 그것을 논거로 판단하는 논증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모르는 것을 예측하여 안다고 가정하여 참이라고 판단하다니. 애초에 각 선택의 유용성이 참인지는 어떻게 증명하냐는 게 니체의 비판이다.


셋째, 공리주의는 이익/손해를 계산할 때 나의 이익과 너의 이익을 구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에게 이익 5인 선택 A와 너에게 이익이 6인 선택 B중 공리주의자는 B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익을 얻는 주체에는 무관심하다. 오직 이익과 손해의 양에만 관심 가진다.


하지만 니체는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행위는 그 자체로 자신의 ‘힘에의 의지’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차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형이상학적 레벨에도 해당한다. 그러므로 니체에게는 오히려, 상대에게 100의 이익이 되는 선택을 마다하고서라도 자신에게 1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그것을 우선적으로 택하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 공리주의자에게 판단의 최소 유닛이 공동체라면, 니체에게 판단의 기본 유닛은 개인이다.


넷째, 공리주의에서 ‘좋음’이란,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사후적으로 도출되는 추상적 개념이다.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 되는 ‘상황’에서 ‘좋음’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니체는 ‘좋음’을, 특정 상황에 대한 가치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 예를 들면 영웅이나 위인들로부터 ‘좋음’ 자체가 유래한다.


만약 당신에게 지금 선택지가 A B 두 가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공리주의자는 당신이 A를 택한다면 공동체에 더 많은 이득을 주기 때문에 선하다고 평가하는 반면, 당신이 B를 택하면 공동체에 손해를 주기 때문에 악하다고 진단할 것이다.


하지만 선악을 그런 식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게 니체의 입장이다. 만약 당신이 성인(聖人)과 같은 레벨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당신이 어떤 판단을 하든 선하지만, 당신이 낮은 등급의 인물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든 악하다는 것이다. 선악의 기준은 상황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 왜냐하면 선악이란 사람이 행하는 행동이나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내재하는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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