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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Oct 09. 2020

5-05. 사라진 기억은 어디로 가는가?

무의식의 기원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신진대사 활동을 하며 그러려면 입력값과 출력값이 필수다. 먹고 싸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 아기 또한 자신의 생명 질서를 유지하려 하며, 역시 먹고 싸는 활동을 통해 실현된다. 문제는, 다른 대부분의 동물종과 달리 인간종은 태어나자마자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유기체 덩어리라는 거다.


다른 포유류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일어설 수 있고 걷고 뛸 수 있다. 반면 인간 아기는 생후 1년은 지나야 겨우 일어설 수 있고 3-4년은 지나야 능숙하게 걷고 뛸 수 있다. 온전히 혼자서 살 수 있으려면 최소 10년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인간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의 능력으로 생존 본능을 유지할 수 없다. 무조건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아기는 자신이 먹고 싶을 때 지체없이 먹을 수 없으며 싸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먹고 싶은 욕망과 먹는 활동 사이에 필연적으로 시간적 지연이 발생한다. 그 지연은 생명을 위협하는 시간이므로 아기에게 불쾌를 일으킨다. 아기는 불쾌를 줄이고 해소하기 위해 어떠한 행위를 시도하는데, 울음이나 칭얼거림 등이 그에 해당한다. 자신의 행위와 외부 반응에 대한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가장 빨리 성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행위를 습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를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자신을 배고프게 만드는 상황의 기억과 그에 대한 불쾌의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아기는 처음에는 자기라는 인지도 타자라는 인지도 없다. 자신과 세계를 통합되고 연결된 단일한 하나로 인식한다. 엄마라는 존재도 엄마의 젖가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의 바람과 무관하게 엄마는 곁에 있거나 없으며, 배고픔과 무관하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엄마의 젖가슴을 경험하며 아기는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세계를 차츰 알아차린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으로만 나뉘었던 아기의 세계는 이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또 다른 축으로 나뉜다. 아기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일치시키려 노력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울기도 하고 소리 지르기도 하며 아기는 오직 경험을 통해서 가장 적합한 반응을 익힌다. 그렇게 아기는 인간의 (넓은 의미의) 언어를 학습한다.


애초에 엄마의 젖가슴은 자신의 배고픔을 해소시켜 생명 질서를 유지시키는 대상인데, 젖을 빠는 행위 자체에서 아기는 또 다른 쾌감을 느끼면서 배고프지 않아도 아기는 엄마의 젖가슴을 찾게 된다. 이를 통해 인간에게는 생존 본능뿐 아니라 생식 본능 또한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식할 수 있는 신체기관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어도 생식을 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는 생래적으로 타고나므로 아기는 자신의 신체를 통해 그러한 쾌감을 성취하고 싶어한다.


그것 또한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성질이다. 다른 동물들은 오직 번식기에만 성욕을 표출하고 그 외 시기에는 결코 성욕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성인은 늘 성욕을 지니고 살아간다. 생식활동이 가능하게끔 생식 기관이 발달하는 2차 성징부터 인간은 계속 성욕을 가진다. 그렇다면 사춘기 전에는 성욕이 없을까. 프로이트는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성욕을 지닌다고 보았다. 다만 생식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는 다른 신체를 통해 성욕을 해소한다.


신체나 물체를 입으로 빨거나 항문을 긁거나 성기를 비비는 등의 행동이 아기가 성욕을 충족시키는 행위다. 아기는 온몸으로 성욕을 충족하고 쾌감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성기와 관련된 행동만 성행위라 느끼는데 그것은 생식 기관이 발달해 생식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기는 생식이 불가능함에도 생식본능은 그대로 지녔기 때문에 생식 기관이 아닌 다른 신체 부위와 방식으로 생식본능을 표출한다.


인간 아기는 거리낌없이 자신의 생식 본능 충족시킨다. 하지만 그 시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보호자(주로 부모)는 아기가 아무거나 빨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항문을 긁도록 놔두지 않고 성기를 만지고 비비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배고플 때 젖도 제때 주지 않더니 이번엔 저 물건을 빨면 안 된다고 한다. 생존 본능의 충족은 지체되고 생식 본능의 충족은 금지된다.


아기에게 세상을 나누는 세 번째 축이 생겼다.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이 완전히 일치하면 행복할 텐데. 안타깝게도 셋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 아기의 필연적인 불행이다. 금지된 욕구는 의식의 밑에 가라앉아 무의식이 된다. 근원적인 불쾌는 빨리 잊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망각 말고 정신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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