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 화폐 = 기업 : 주식
화폐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될까. 여전히 미스터리인 질문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물론 그 3가지 접근은 서로 배타적이거나 독립적인 건 아니고 일정 부분 겹치거나 호완되는 부분도 있다. 하나는, 유물론적 접근인데, 국가 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가치의 합을 그 국가가 발행해서 현재 유통 중인 화폐량의 합으로 나누면, 단위 화폐당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국가에 상품 A만 1만 개 있고, 그 국가에 사용 중인 전체 통화량이 1만 단위라면, 화폐 1단위당 가치는 상품 1개만큼이 된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위와 같이 설명하고 또 그런 전제 위에 논의를 펼쳐나간다. 하지만 저 논리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순환 논증의 오류인데, 일명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비견할 수 있겠다. 무슨 말이냐면, 정말 어느 국가에 생산되는 상품이 딸랑 A 하나뿐이라면 계산은 간단하다. "A 하나 얼마예요?" "한 개 1원이에요." 참 쉽다. 문제는, 한 국가에서 생산하는 상품 또는 서비스의 종류가 무수히 많다는 데 있다.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 이렇게 예를 들어 보자. 이 국가에는 오직 5개의 상품만 생산된다. A 1만 개, B 1천 개, C 1백 개, D 10개, E 1개 생산된다고 치자. 그리고 전체 화폐량은 1만 원이다. 그렇다면 1원의 가치는 (A + B/10 + C/100 + D/1000 + E/10000)가 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순간에 발생한다. "A 하나에 얼마예요?" "?????" 계산할 수 없다. 왜냐하면 A B C D E 사이의 가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맨 처음의 계산에서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화폐의 가치는 A가 정해주고, 동시에 상품 A의 가치는 화폐가 정해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알려주는 의존 관계이기에, 상품 A와 화폐 그 자체의 본연적 가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는 이어서 볼 논의에서도 본질적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점임을 미리 밝힌다.
둘째 접근은 수요 공급의 법칙이다. 해당 국가의 화폐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갖길 원하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처분하길 원하는가 하는 파워 게임의 균형점에서 화폐의 가치가 정해진다. 이는 국제 환율 시장에서 매일 달라지며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별 국가의 화폐는 해당 국가의 국민과 그 지역으로 (여러 목적으로) 여행을 가는 이들이 주로 갖기를 원하는 반면, 미국 달러의 경우는 미국인이나 미국 여행자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투자를 목적으로 소유하길 원한다는 점에서 막강한 가치와 파워를 지닌다.
셋째 접근은 각 화폐들 간의 관계와 가치 차이에 주목하는 방법이다. 현재 세계에서 화폐의 가치는 단순히 국내의 사정만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국제 정세를 폭넓게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국가의 브랜드 가치부터, 군사적인 위협이나 정치적 상황, 문화적 입지 등 전반적인 요인에 의해 그 국가의 브랜드 파워가 매겨지고 그에 따라 해당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의 가치도 달라진다. 이 설명은 위의 첫째 접근 및 둘째 접근과도 겹치는 설명이지만, 핵심은 전 세계에 발행되고 사용되는 모든 가치는 서로 관계를 맺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는데, 그 안에서 해당 화폐가 차지하는 입지에 따라 그 가치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위 접근은 주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업과 주식의 관계는 국가와 화폐의 관계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화폐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관계이다. 국가가 주체고 화폐는 그 수단이나 방법론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 반대로 간주할 여지도 충분하다. 현재 기업과 주식의 관계를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무리인 면이 있지만, 주식회사와 주식의 역사를 따져본다면 충분히 반대로(=주식이 주, 회사가 종이라는 발상) 생각해볼 수 있는 면이 있다.
주식의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 역시 3가지 접근으로 생각해보자. 첫째는 기업 총 가치를 발행한 주식수로 나누는 방식이다. A 회사의 가치가 1000억으로 산정되고, 그 회사가 발행한 주식 수가 1000만 주라면, 한 주당 가격은 1만 원이 된다. 실은 이게 펀더멘탈 분석의 기본이기도 하다. 물론 기업의 총 가치를 어떻게 산정할 것이냐는 또 다른 숙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이 지면의 주제가 아니므로 넘어가겠다.
둘째 접근은 해당 주식을 어느 가격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수하길 원하고, 반대로 어느 가격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매도하려 하는지 그 파워 게임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발상이다. 이는 주식 거래가 이루어지는 내내 우리가 목도하는 광경이다. 지금 당장 호가창을 켜보면 바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식 투자를 심리전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접근은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모든 종목 간의 관계망을 보는 방법이다. 하나의 종목은 단지 그 기업의 가치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식 종목-해당 기업'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모든 종목은 서로 두텁든 얇든 연결되어 있고 모든 종목을 각각의 관계에 따라(테마주로 엮이든 협력 관계든 보완 관계든 경쟁 관계든 등등) 선을 그으면 전체의 시스템을 구성하게 된다. 그 시스템 안에서 해당 종목이 그 시점에 차지하는 입지에 따라 주식 가격은 달라진다.
특히 주식에서 이런 접근이 중요한 이유는, 지수를 보면 알겠지만, 주식에 투자된 전체 금액의 합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쪽 분야나 테마에 돈이 쏠리면 나머지 테마에는 그만큼 돈이 덜 가게 되므로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어느 회사의 이슈가 좋아져 가격이 상승한다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척점에 있는 테마나 기업의 주식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특히 정치인 테마주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생각은 우선은 국내 주식 내에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시야를 넓혀 국경을 넘어서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내가 한국 주식에 투자한 금액을 빼서 미국 종목에 넣는다면, 한국 주식과 미국 주식 또한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생각할 여지는 충분하다. 한국 증시는 특히 미국 증시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국 주식뿐 아니라 다른 각국의 증시와 종목과의 관계도 그려볼 수 있다. 다만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심리적/문화적/경제적/기술적 디스카운트가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주식 얘기를 먼저 쓴 다음에 화폐 얘기를 쓰려고 했었다. 직관적으로는 주식 이야기가 바로 이해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화폐를 이해하는 게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쓰는 게 오히려 메타적으로 생각할 점이 더 많을 것 같아 순서를 바꿨다. 화폐를 통해 주식을 사유하듯, 반대로 주식을 통해 화폐를 사유할 수 있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Q. 주식의 가치를 분석할 때는 내재적 접근이 우선이다. vs 제대로 된 가치 분석은 외재적 접근을 통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