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아는 것보다 '어떻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평범한 투자자들이 주식 타짜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뭐겠는가. 바로 어느 종목이 좋냐는 거다. 물론 주변인들이 나 같은 (타짜 아닌) 초짜에게 오를 종목을 물을 일은 거의 없다. 몇 번 있긴 했지만 모두 다 함구했다. 대신 초반에 주식 카페 활동을 할 때는 내가 발견한 종목을 참 많이도 올렸다. 왜 그럴 때 있잖은가. 아~ 이거 갈 거 같은데. 하- 입이 근질거리네, 이걸 누구한테 말하지, 싶을 때 말이다. 물론 주변인에게 말할 정도의 확신과 실력은 없기에 그럴 때마다 카페에 주구장창 올렸다.
다행히 내가 올린 종목의 일부는 며칠 또는 1-2주 내에 슈팅했고, 나머지 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몇 개월 내에 급등하더라. 그걸 보면서 (올리기만 하고 매수하지 않은 것을/미리 매수했다가 오르기도 전에 매도한 것을) 후회도 했고 아쉬워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차트 보는 눈이 영 없는 건 아니구나 하면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공부했다. 그것과 반대로 실제 내 계좌 수익률은 점점 처참해졌고, 그럴수록 나는 의기소침해져 결국 카페 활동마저 관두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어떤 차트를 좋게 보고 있는지, 혹은 요즘 증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그 누구와도 교류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와 교류하며 좋은 영향력을 받고 또 마인드 컨트롤도 잘하고 싶은 욕망이 아주 가끔 들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특히 어떤 종목이 좋다고 얘기하는 건 정말 민감한 문제다. 또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내가 그 종목을 보는 눈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져버려 투자할 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섣부른 종목 추천은 금물이다.
당연히 나 또한 그 누구에게도 어떤 종목이 좋냐는 질문 따위 한 적이 없다.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기에. 좋은 종목이 뭔지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종목이 왜 좋은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그걸 매번 다른 사람에게 물을 수는 없잖은가. 좋은 종목을 볼 줄 아는 눈과 동시에 그것이 왜 좋은지 이유를 스스로 알 수 있는 뇌를 길러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책 추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나더러 책 추천해달라는 문의가 많았다. 업무적으로도 많았지만 사적으로도 그런 질문을 종종 받곤 했다. 업무를 제외한 사적 요청에는 대부분 추천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편이다. 강형욱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도 똑같이 말하고 싶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정말이다. 나와 맞는 책이 있고 맞지 않는 책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좋은 책이 남에게도 좋을지는 알 수 없다. 그 사람의 취향과 정치 성향과 세계관과 살아온 이력에 따라 호불호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거의 내가 좋아한 책을 현재의 내가 싫어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 책이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남들이라고 다를까. 좋은 책이 뭐냐고 묻기보다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이나 기준을 알려달라고 하는 게 훨씬 현실적인 질문이다.
최악의 부모는 고기를 잡아주고, 보통의 부모는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최고의 부모는 고수가 고기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식도 책도 그와 같다. 종목을 알려주는 건 최악이다. 어떤 책이 좋다고 들이미는 것도 강압적이고 고지식하다.
예전에 내 블로그에서 꼰대 학부모와 댓글로 설전을 한 적이 있다. 내 글의 요지는 만화책이든 웹소설이든 자신에게 좋은 책이면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거기다 한 학부모가 양서와 베스트셀러를 먼저 읽히는 게 중요하다고 댓글을 단 것이 시작이었다. 물론 이것은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이지만, 여전히 나는 고전이든 베스트셀러든 특정 책을 무조건 좋다고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읽히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오히려 아이로 하여금 독서는 지루하고 어렵고 무거운 거라는 편견을 미리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흥미와 재미를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을 읽는 게 우선이라고 여전히 확신한다.
첫 책 [문해력 숲에서 캠핑을]의 북토크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비친 참석자가 있었다. 본인의 자녀가 웹툰이랑 만화책만 봐서 걱정이라고. 그런데 재밌는 건 본인도 웹툰이랑 웹소설을 즐겨본단다. 그래서 섣불리 자녀에게 고전이나 양서를 읽으라고 권할 수가 없어서 더 고민이라고. 나는 그냥 웹툰이랑 만화책을 원없이 읽게 놔두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분은, 자녀가 앞으로 계속 웹툰이랑 만화책만 볼까봐 두렵단다. 나는 두 가지를 덧붙여 말했다. 웹툰이랑 만화책만 보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 그것조차 안 보는 사람이 더 많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사람은 그렇게 1차원적이고 단순하지 않다는 점. 웹툰과 만화책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지루해질 때가 온다. 새로움을 찾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그때 스스로 소설이든 뭐든 찾게 될 것이고, 혹은 그때쯤 부모님이 다른 책을 권해도 좋다고 말했다. 내 주변의 수많은 책 덕후들도 그 시작은 만화책과 판타지소설이었다.
나 또한 시작은 만화대여점이었다. 한 권 대여하는 데 300원 하던 국민학교 4학년 시절. 나는 매일 만화책을 빌려 읽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만화책을 읽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래도 재밌게 읽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시집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소설을, 철학책을, 과학책을 읽게 되었다. 여전히 만화책을 즐겨 보지만 그보다는 철학책과 과학책을 훨씬 더 많이 읽는다. 내 친구들 중에도 '퇴마록'이니 '드래곤 라자'니 그런 것들을 즐겨 보다가 책덕후가 된 케이스가 흔하다.
인간은 늘 새로움을 원한다. 그리고 인간은 늘 더 나아지길 원한다. 나는 그 점이 인간이 지닌 본원적인 욕망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좋은 책'을 읽혀야 한다는 도그마에 갇힐 필요는 없다. 누구나 어느 순간엔 그들 각자의 '좋은' 책을 찾게 될 것이므로.
Q. 보편적인 '좋음'은 존재한다. 그러니 그 '좋음'을 먼저 아는 것이 유리하다. vs 보편적인 '좋음'이란 건 실은 권력의 한 측면이거나 다수의 환상일 뿐이다. 그러니 내게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