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라캉의 상징계와 실재계

by 이태이

주식 공부를 하면서 몇 번의 빅 재미가 있었다. 그 중 단연코 가장 큰 재미는 차트 분석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다. 나도 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PER이니 PBR이니 그런 기본 정보를 토대로 증권사의 리포트를 주로 참고했었다. 그러다 차트를 분석해서 매매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몇날며칠을 차트분석 책만 읽었다.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다음 빅 재미는 조건검색식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다. 이건 정말 신세계였다. 원래 D사의 프로그램만 쓰다가 조건검색을 위해 K사 프로그램을 깔았다. 관련 책을 읽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평소 봐두었던 차트들을 꺼내 보며 고수가 알려주는 검색식뿐 아니라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검색식을 만들어보고 성과검증을 통해 피드백 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 또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건검색식에 너무 의존해선 안 된다. 물론 지금도 5개 정도의 검색식을 쓰고 있지만 모두 최근에 만든 것들이다. 예전에 야금야금 만들어 둔 몇 십 개의 검색식은 이제는 아예 쓰지 않는다. 사실 시간이 있다면 검색식보다는 거래대금 상위 종목이나 상승 상위 종목을 하나씩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만 여전히 검색식을 쓰는 이유는 시간을 아끼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조건검색식보다 거래대금/상승 상위 종목을 하나씩 보는 게 더 좋은 이유는 당연히도 내가 원하는 패턴의 차트를 검색하기 위한 모든 요소를 다 조건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패턴에 필요한 요소를 하나하나 수치화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같은 패턴의 차트여도 여타 주변적인 정보는 제각각 다르다. 또 예외도 엄청 많고 그 범위도 넓다. 그것들을 다 수치로 치환하여 조건화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대략적인 요소들만 조건화해서 최종적인 선택은 하나하나 눈으로 다 확인해야만 한다.


처음엔 가끔 그런 망상도 했었다. 그런 조건들을 다 갈무리해서 검색식에 넣을 수만 있다면, 하고 말이다. 내가 치밀하지 못한 걸까. 아예 요소 하나하나의 확률을 다 데이터화할 수도 있다. 20일선이 상승세일 때 주가가 오른 확률은 얼마였는지, 20일선이 하락세일 때 주가가 오른 확률은 얼마였는지, 20일선 > 60일선 > 120일선 등 정배열일 때, 반대로 역배열일 때 등등 각각의 요소를 다 분쇄하여 확률을 도출할 수 있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불가능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한켠으로는 다음의 3가지가 마음에 걸리기도 하다. 첫째는, 그 상승과 하락이라는 게 지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가령 2021년을 표본으로 각 요소의 상승 확률을 꼽는 것과, 2023년을 표본으로 하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국증시의 상황과 세계 정세의 변화를 개별 종목이 이길 리 없다. 그러니 이 상승이 전체 맥락 속에서의 자연스런 이끌림이라면, 그걸 차트 내적인 논리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둘째는, 혹시 내가 아예 생각지도 못한 요인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참 명언이다. 비슷하게는, 생각하는 만큼 보인다. 내가 차트를 본다고 해서 모든 요소를 다 빠짐없이 보는 건 아니다. 배운 대로 보고, 느낀 대로 읽을 뿐이다. 오락실에 가면 틀린 그림 찾기도 잘 못하는 내가, 과연 차트의 구석구석을 다 잘 보고 있다고는 확신 못하겠다.


셋째는, 기준을 정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위의 예를 다시 들고 온다면, 20일선이 이틀 연속 상승이면 그걸 상승세로 봐야 할까. 혹은 적어도 5일 이상 상승이어야 상승세라 할 만할까? 일봉이 전일 대비 +1% 올랐다면 이걸 상승으로 봐야 할까. 아래꼬리가 어느 정도 길어야 길다고 할 수 있을까. 조건검색식은 이 하나하나를 다 수치로 넣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조건검색식을 만들려면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0.1씩 수치를 바꿔가며 과거 데이터를 다 확인해야 한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잠>에서 남편은 심각한 몽유병에 걸려 반려견을 죽이기에 이른다. 이제 막 애를 낳은 아내는 남편이 자식까지 죽일까봐 두렵다. 남편은 정신과 치료에 집중하고, 부인은 굿과 부적에 의존한다. 결국 남편의 몽유병은 치료되는데, 과연 정신과 약 덕분인지 굿 때문인지 영화는 답을 알려주지 않고 끝난다. 남편은 과학을, 부인은 초자연적 현상을 믿는다. 둘의 세계에서 각자의 믿음은 진실이다. 그런데 정말 둘 중 누가 옳을까.


주가의 변동도 실은 위와 같다. 주가가 오른 이유는 현재 차트가 정배열이고 20일선과 60일선이 상승 추세여서일까. 라캉이라면 이를 '상징계'와 '현실계'(=실재계)라는 말로 설명할 것 같다.


'상징계'는 질서화된 모든 것들, 그래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가리킨다. 다시 영화 <잠>을 예로 든다면, 몽유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학적 지식 체계가 상징계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부인이 믿는 무속신앙이라는 신앙적 체계 또한 또다른 상징계이다.


'현실계'는 그러한 '상징계'에 속하지 않는 부분들이다. 체계에 잡히지 않으며 따라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잉여이다. 영화 속 몽유병이 현실계에 해당한다. 물론 정신의학도 토속신앙도 모두 몽유병의 원인과 현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설명일 뿐이다. 그저 몽유병을 장악하고 있다는 제스처만 취할 뿐이다. 몽유병 그 자체는 그 어디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남편의 몽유병이 끝내 약 때문에 나은 건지 굿 때문에 나은 건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지젝은 2001년 미국의 쌍둥이 빌딩 붕괴야말로 미국인들에게 대표적인 '현실계'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실제로 눈으로 보면서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는 사태였다. 알카에다의 자폭 행위는 미국인들의 상징계를 벗어나 있었다. 물론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상징계의 제스처가 뒤따르지만.


다시 차트로 돌아오자. 차트도 조건검색식도 모두 '상징계'에 속한다. 모두 다 수치화한 결과물이고 따라서 말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주가 상승/하락의 이유를 모두 검색식으로 수치화할 수는 없다. 차트를 다 말로 설명할 수도 없다. 여전히 중요한 무언가가 여분으로 남는다. 그게 '현실계'이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나 얘기하다 종가 시간이 다 되어 잠깐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차트를 보며 종목을 고르는 와중에 친구가 내게 물었다. 최종적으로 그 종목을 고른 이유를 자신에게 설명해 줄 수 있냐고. 조금은 당황했다. 나는 과연 특정 종목을 고른 이유를 말로 정확히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애매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내가 공부한 게 얼만데, 겨우 그 정도 이유조차 설명할 수 없다면 나는 그간 공부를 헛한 거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애써 설명했다. 그 친구가 내 설명을 듣고 과연 납득했을지는 알 수 없다.


남들 앞에서도 잘해야 진짜 잘하는 거라는 유명한 불문율이 떠오른다. 남들 앞에서도 잘한다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봐도 바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이 돼야 한다는 뜻일 테다. 그러니까, 내 작업이 온전히 '상징계'에 포섭되지 못한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의도 아닐까.


주식 공부할 때 모두가 하는 조언 중 하나가, 반드시 매매일지를 쓰라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그리고 반성하건대) 나는 오랫동안 매매일지를 쓰지 않았다. 이는 장자와 비트겐슈타인의 가르침(?)을 내 나름대로 소중히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일단은 변명해 두고 싶다.


장자의 수레바퀴 만드는 노인 편에는, 진짜 중요한 이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라며 옆에서 책 읽는 선비를, 수레바퀴 노인이 질책한다. 자신이 아무리 시범을 보이며 설명해도 아들이 잘 못 알아듣는다며 말이다. 내가 특정 종목을 고르는 이유도 그와 같지 않을까. 진짜 중요한 이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고 말했다. 사랑이니, 자유니, 정의니, 살면서 진짜 중요한 것들은 오히려 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들의 가르침을 담보로 나는 몇 년 동안 매매일지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마음이 바뀌어 매매일지를 블로그에다 비공개로 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위의 그 친구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말로 할 수 없으면 감으로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감으로 하면 그게 제대로 된 투자라 할 수 있냐고 말이다. 예전 같으면 장자와 비트겐슈타인의 가르침으로 응수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그의 말에 한편으론 동의한다.


왜냐하면 결국 언어화되지 못하는 것들은 온전히 지각할 수 없고 따라서 명확히 장기기억화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내가 왜 성공했고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제대로 된 반성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전반적인 투자 과정을 체계화할 수 없다. 그날그날의 감을 따라야 한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예술 또는 도박이 되고 만다.


공부할 때도 누군가를 가르칠 때 높은 학습 성취를 보인다. 교수들이 논문만 쓰는 게 아니라 강의를 겸하는 것도 실은 강의를 준비하고 실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깨닫지 못한 통찰과 반성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정우 교수의 [개념 - 뿌리들]이라는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무리 경험을 많이 해도 개념을 가지고 그것들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 그 경험들은 어떤 인상이나 희미한 기억이나 순간적인 느낌 같은 것들로 지나가버린다고. 투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Q. 차트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vs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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