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길 잃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랬는데

대중가요 vs 시

by 이태이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고등학교 문학 시간. 선생님이 대중가요 가사와 시의 차이점이 뭘까 물으시며 위 시를 보여주셨다. 만약 위 시에서 마지막 아홉 행이 없었다면, 시가 아니라 대중가요 가사가 됐을 거라고 하셨다.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하는 이여"로 끝났다면 말이다. 그런데 위 작품이 가사가 아니라 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마지막 아홉 행 때문이라고.


대중가요 가사의 주인공은 끝까지 수동적이라 기다리기만 한다. 그래서 운명적인 슬픔을 센티멘털화하는 것이 노래 가사의 감성적 특성이다. 반면, 시의 주인공은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을 취한다. 위 시에서도 화자는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하는 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 너를 찾으러 간다. 물론 거기엔 센티멜털적 감수성은 없지만 대신 어둡고 불안한 세계를 마주할 용기와 각오가 생긴다. 그것이 가사와 시의 결정적 차이라고 배웠다.


유명 가요 가사들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그렇다. 가수들은, 사랑한다고 말해달라 조르거나, 떠나간 그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영원히 기다린다거나,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유명한 시들을 생각해보면, 떠나는 님을 축복하거나(진달래꽃), 스스로 불이 되어 밤을 밝히거나(알 수 없어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며 내 앞에 펼쳐진 길을 걸어간다(서시).


선생님은 또 주요한의 <불놀이>를 소개하며 덧붙이셨다. 문학사에서 '불놀이'를 근대시의 시작으로 꼽지 않는 이유가, 여전히 대중가요의 감수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불놀이>를 읽어보면 확실히 감정이 지나치게 절절해서 주체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가요에서 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이라 평가 받는다. 나중에 커서 읽은 [낯익은 시 낯설게 읽기]라는 책에서는 주요한의 '불놀이'를 전근대적 세계에서 근대를 마주한 청년의 불안함으로 해석했다.


훗날 그 불안함을 내가 주식 시장에서 느끼게 될 줄을, 그때는 생각조차 못했다. 주식에서 첫 번째 대실패를 맛보고 나는 중장기 투자자로 포지션을 바꿨다. '좋아보이는 차트'='세력이 착실히 매집 중이라고 판단되는 종목'을 찾아 조금씩 나도 모아가는 방식이었다. 언젠가는 슈팅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하지만 2022-2023년은 한국증시 대폭락의 시대였다. 많은 종목들이 종종 한 두 차례 급등을 보여줬지만, 꾸준히 하락하다가 단 한 번의 슈팅으로는 겨우 본전을 면하지 못했다. 이래서는 잘해야 본전 못하면 명백한 손실이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꾸준히 물타기 할 넉넉한 자금도 없었고, 언제까지 물타기를 해야 하나 불안하고 초조한 날들만 계속되기에 지쳐갔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스캘퍼로 전향했다. 비기너즈 럭 덕분인지 항상 초반엔 잘 된다. 하지만 이내 약빨이 떨어지고 계좌는 파랗게 물들고 내 마음은 퍼렇게 멍든다. 지금은 스윙으로 포지션을 바꾼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어느 정도 안정기를 찾아가는 중이지만, 아직 햇병아리이긴 마찬가지다.


가치투자든 장기투자든 그 포지션은 언제가 될지 모를 어느 미래의 상승을 기다리는 투자 포지션이다. 대중가요 가사의 주인공과 같은 마음이다. 님이 돌아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는 그 집념과, 내가 매수한 종목이 언젠가는 오를 거라는 간절함이 겹친다. 그러므로 당장 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자금이 있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투자법이다. 기업 펀더멘털 분석이든 차트 분석이든 어느 정도 안목이 있고, 또 긴 시간 동안 적절히 분산 매수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자제심과 인내심이 있다면 분명 이 방식은 좋은 투자법이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점과, 필요할 때 현금화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전업투자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투자이기도 하다.


반면 스윙이나 데이트레이딩, 스캘핑 등의 단기투자는 지금 당장 오를 종목을 찾는다는 점에서,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내가 너를 찾으러 가겠다는 시의 화자와 같은 스탠스를 취한다. 그러니 단기투자자는 가만히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어느 테마가 주목받는지, 상승 상위 종목과 거래대금 상위 종목은 무엇인지 등을 매일 서치해야 한다. 그러다 내 님을 찾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뜸 님의 손을 꼭 잡고 꽃동산으로 뛰어가야 한다. 물론 내가 뛰어가는 그곳이 꽃동산일지 낭떠러지일지는 불확실하지만.


Q.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어차피 내가 대세를 움직일 수 없다면 대세에 따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섣부른 움직임은 오히려 대세를 거스를 수 있다. vs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파도가 잦은 바다를 찾아 떠나야 한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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