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이태이

분명히 올라갈 자리인데 왜 흘러내리지? 의아해서 관심종목 창을 보면 죄다 파란색이다. 그제서야 지수를 확인한다. 어김없이 마이너스, 파란불이다. 짜증이 난다. 지수가 마이너스든 말든 가야 할 놈은 가야 할 거 아니야. 우리 반이 전교 꼴찌반이라고 내 성적이 낮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지수가 안 좋을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든다. 지수가 먼저가 아니라 개별 종목이 우선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어차피 지수라는 건 그 자체로 독립적인 변수가 아니라 모든 종목의 합 이다. 그러니 사실상 지수는 종속 변수이고, 개별 종목이 독립 변수이다. 마치 우리 반 평균 점수가 내 점수에 영향을 받을지언정, 내 점수가 우리 반 평균 점수에 영향을 받을 리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위와 같은 발상 자체가 사후 도착이다. 미국 시장이 안 좋거나, 금리나 환율이 변동됐거나, 국내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에 특별한 이슈가 없는 다수 종목이 하락했고, 그에 따라 지수가 하락한 것으로 표시됐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 대한 이해는 생략한 채 결과값만 보고 개별 종목이 먼저냐 지수가 먼저냐 말하는 건 탁상공론이다.


흔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관용어를 쓰곤 하는데, 그 또한 연구가 미흡했던 과거에 만들어진 잘못된 표현이다. 지금의 생물학자들은 답을 알고 있다. 달걀이 먼저라는 걸. 닭이 먼저일 수는 없다. 갑자기 닭이 지구에 뿅 하고 나타날 수는 없잖은가.


그럼 달걀은 닭 없이 뿅 하고 나타났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그 알은 공룡이 낳은 것이다. 공룡이 낳은 기형알이 달걀이었고, 그 알에서 태어난 기형공룡이 자라 닭의 조상이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 저 과정은 단 한 번만에 일어난 게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진 굉장히 지루하고 기나긴 사건이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어떨까. 내가 먼저일까 국가가 먼저일까. 이것은 거의 딜레마에 가까운 문제이다. 역사적으로도 두 가지 관점이 가능한데, 개인이 먼저라는 입장과 국가가 먼저라는 입장이다. 물질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당연히 개인이 먼저다. 국가가 저절로 형성된 뒤 그 국가에 사람들이 가입한 게 아니다. 특정 국가가 세워지기 전에 당연히 그 구성원들이 먼저 존재했다. 대한민국도 조선도, 미국도 중국도,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국가는 반드시 그 국가를 세운 인간들이 먼저 있었기에 역사책에 잉크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관념적으로 보자면 개인보다 국가가 먼저라고 볼 수 있다. 일단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개인'일 수 있었던 건 지금과 같은 근대국가 시스템 덕분이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이 있기에 나는 온전히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내가 초중고교 및 대학교를 다니고, 각종 인프라와 복지 혜택을 받고 세금을 내고, 법적/행정적 보호를 받고 또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권리를 행사하며 그 안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인권이니 기본권이니 민주주의니 그런 정치적 개념도, 자본주의니 금융이니 그런 경제적 체계도 근대국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건지 대한민국이 나를 빚은 건지를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누기 쉽지 않다.


가령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교포 2세, 3세들을 보면 확연히 느껴진다. 외모부터 묘하게 다른데다 말하거나 행동하는 걸 보면 확연히 토종 한국인과 다름을 눈치챌 수 있다. 한국적인 문화 풍토와 미국적인 문화 풍토는 분명 다르고, 그 안에서 자라고 살아온 개인의 캐릭터와 퍼스널리티도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한 한국적 문화 풍토와 미국적 문화 풍토를 만든 건 무엇인가. 그게 결국 국민일까. 논의는 순환한다.


20세기 유럽의 역사학을 풍미했던 아날학파는 다른 답을 낸다. 그들은 장기적인 시간과 공간에 주목한다. 가령 지리적, 기후적 특징들. 산지가 많은지 평야가 많은지, 일조량이 많은지, 바다에 가까운지 대륙인지, 더운지 추운지, 습한지 건조한지 등의 물질적/환경적 요인들이 그 사회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발상이다. 이런 생각이 더 확장해서 왜 중국 등 아시아에서는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가 발생했는지, 반대로 유럽에서는 알파벳 같은 표음문자가 형성됐는지, 왜 어떤 곳은 유일신 종교를 믿고 다른 지역은 다신교를 믿는지와 같은 연구를 내놓기까지 했다. 결국 (국가 <--> 개인)은 표면적으로는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범주에 불과했고, [자연 <--> (국가 + 개인)]의 구도로 더 넓게 보자는 것이 그들의 논의 틀이다.


다시 주식 이야기로 돌아와, (지수 <--> 개별종목)의 관계도 위와 같은지 모른다. 실은 [현실 <--> (지수 + 개별종목)]과 같은 틀로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지수가 먼저냐 개별종목이 먼저냐 하는 논의는 피상적인 착각에 의한 허구적인 논쟁일 것이다. 오히려 지수와 개별종목은 구체적인 현실적 맥락과 그 변화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까. 기술적 분석을 위주로 하는 투자자일수록 특히 주의해야 할 사안이다.


Q. 전체는 부분의 합이다. 그러니 부분을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vs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구성 요소를 다 안다 해도 전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전체만의 특성을 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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