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칸트의 윤리학

by 이태이

칸트의 윤리는 보편적 정언명령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형식적 윤리로 귀결된다. 만약 윤리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 윤리는 반드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윤리의 내용 자체는 시대와 공동체의 맥락에 따라 항상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을 살인해선 안 된다" 같은 명제도 모든 사회 모든 시대를 통틀어 다 윤리적인 참이 될 수는 없다. 우리도 알다시피 과거의 많은 사회에서는 살인이 허용됐고, 사실 불과 십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국가에서는 사회적 살인인 사형이 실행됐었다. 그러므로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윤리를 정립하려면, 그 윤리는 반드시 형식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러한 보편적 형식을 윤리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자유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형식적 윤리에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디렉션이 없기 때문에 각 상황에서 주체는 보편적 형식에 입각해서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이 명확한 윤리적 답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칸트가 말하는 자유 개념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자유, 즉 소극적 자유나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과는 거의 반대에 가깝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는,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는 허용의 맥락에 가깝다. 하지만 칸트에게 그건 자유가 아니라 구속이다. 배고프니까 밥을 먹는다면 그건 본능에 의한 구속이고, 예전에 먹었던 치즈케익이 먹고 싶어 먹는다면 그건 경험에 의한 구속이다. 칸트의 자유란 형식적 논리에 따른 결과물을 행할 수 있는 실천의지를 말한다.


살고자 하는 본능과 식탐이라는 욕망은 눈앞의 마시멜로우를 먹으라고 고함친다. 하지만 이걸 안 먹고 참으면 더 큰 상이 주어지는 상황이라면, 본능과 욕망을 이기고 참을 줄 아는 것이 칸트식 자유이다. 마찬가지로 칸트식 윤리라는 것 또한 그처럼 1 더하기 1은 2가 되듯, 상황과 맥락에 얽힌 변수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추론하여, 도출된 결과값을 그대로 따르는 걸 말한다. 주체는 항생 매 순간 현실의 욕망에 맞서 투쟁해야만 윤리적 실천을 행할 수 있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이 칸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자유의지를 발현할 리가 없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자유의지가 깔려있다고 말하는 건 대단히 무책임한 윤리이다. 칸트도 그러한 난관에 부딪혔기에 마지막엔 결국 자신의 윤리학에 신을 도입했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칸트의 신은 초월론적 신으로, 형이상학적 개념에 속한다.


만약 신을 도입하지 않고 끝까지 주체의 자유의지에 맡긴다면 주체는 욕망에 굴복해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 자멸을 막기 위해 칸트가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초월론적 신이다. 많은 이들이 이 대목에서 허무함과 분노를 느끼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칸트 윤리학의 핵심은 바로 끝없는 심연 앞에서 멈출 줄 아는 능력인지 모른다. 만약 칸트가 신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정말 모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그에 따라 윤리적 실천을 할 수 있다는 세계관을 가정했다면, 그 세계관 속의 인간은 모두 심연 속에 끝없이 떨어질 운명에 처할 테니 말이다. 그 심연은 욕망의 심연, 관습의 심연, 감정의 심연일 것이다.


나는 위와 같은 발상이 주식에서의 종목 매수와도 같다고 느낀다. 불빛을 보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많은 투자자들은 불기둥을 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호가창이 미친 듯이 널뛰고, 수백 수천 주의 거래량이 빛의 속도로 체결되는 걸 보고 있으면 눈이 뒤집힌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매수하는 행위는 정말로 투자자 본인의 주체적인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부자유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좋은 투자를 하고 싶다면, 매수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자문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나는 욕망에 굴복해 자유가 아닌 허영의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몇 안 되는 과거의 경험에 심취해 지나치게 그 경험을 과신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차트는 너무 아름다우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감정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투자자에게 윤리란, 그러한 욕망과 경험과 감정 앞에서 멈출 줄 아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괜찮은 차트지, 하는 애매한 감 말고, 정말 누가 봐도 이 차트다, 이 차트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확신이 있지 않고서는 함부로 매수하며 그것을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이었다고 얼버무려선 안 된다. 투자의 윤리는, 불확실한 수익을 보고자 달려드는 객기가 아니라 손실을 최소화하자는 목표를 새기며 무분별한 배팅을 절제하는 것이다.


Q.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와 모험심이 있어야 한다. vs 조금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멈출 줄 아는 절제심과 인내력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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