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선택이다

트롤리 딜레마와 미필적 고의

by 이태이

왕초보 시절에 나는 매수 중독자였다. 하루라도 매수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았다. 매일 이렇게나 많은 종목이 급등하는데, 어떻게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냐는 심정이었다. 시드를 100% 다 쓰지 않으면 내가 투자금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는 무능력한 투자자인 것 같아 초조했다. 매수하는 것은 성실한 것이고 매수하지 않는 건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투자 방법과 매매 스타일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내가 읽은 모든 투자서와 대부분의 고수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던 두 가지는, 항상 시드의 절반 이상은 현금으로 보유하라는 것과 분할 매수를 습관화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둘 다 지키지 않았다. 정확히는, 당시에는 하나는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할 매수는 지키고, 현금 보유는 따르지 않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분할 매수라는 건, 한 번에 여러 종목을 사라는 게 아니었다. 분할 매수의 기본적 의도는 시간에 따른 분배를 뜻한다. 한 종목을 매수하더라도 한 번에 매수하지 말고 텀을 두고 조금씩 매수하라는 의미이다. 물론 그때는 전혀 몰랐다. 분할 매수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뜻이니, 여러 바구니에 담으면 되는 줄 알았다. 당시 한 번에 10여 개의 종목을 매수하는 내게 시드를 남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창 주식 카페에서 활동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늘 시드를 남김없이 싹싹 긁어 써서 물타기도 불타기도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시드를 다 털어 매수했다가 몇 개월 이상, 1년 이상 코가 꿰어 매일 기도 메타 중인 사람들도 꽤 있었다. 카페에서도 늘 투자금의 적절한 배분에 대해 강조하곤 했다.


그 중 내 마음을 가장 두드린 조언이 바로 이거였다. 매수 중독자들은 늘 무언가를 매수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종목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거였다.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그 종목은 바로 현금이라는 종목이다. 아무 것도 매수하지 않는 것이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금이라는 종목을 매수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는 조언이었다. 현금은 유일하게 안정성이 100%인 종목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분명한 선택임을 종종 잊고 산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트롤리 딜레마에서 생각할 부분이 많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덕분에 이제는 범 세계적으로 알려진 윤리적 딜레마이다. 기차 브레이크가 고장났는데 저 앞 철로에 5명의 사람이 있다. 기차가 오는지도 모른 채. 옆으로 꺾을 수 있는 다른 철로에는 1명의 사람이 있다. 이때 내가 기관사라면 그냥 가던 길을 가서 5명을 죽일 것인지, 아니면 핸들을 꺾고 다른 철로로 가서 1명을 죽일 것인지. 이것이 트롤리 딜레마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 1명에겐 미안하지만 5명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핸들을 꺾겠다고 답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이들이 그대로 직진하겠다고 답변한다. 나도 여러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일부 학생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핸들을 꺾지 않겠다는 답변을 하곤 했다.


그 중에서 주요한 이유는 바로 내가 직접 핸들을 꺾어 1명을 죽이게 되면 그건 살인죄가 되지만, 그냥 가만히 놔둔 채 직진해서 5명을 죽이면 살인죄가 아니지 않느냐는 설명이었다. 학생들뿐 아니라 성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식의 논증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들은 핸들에 손을 대냐 안 대냐에 따라 선택했냐 안 했냐로 나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핸들에 손을 댔냐 안 댔냐는 책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 순간 내가 핸들을 꺾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다. 이 열차가 직진해서 5명을 죽일 것이라는 걸 인지했음에도 그대로 놔뒀다면, 그건 당연히 하나의 선택이며 그에 따른 책임 소지는 명확하다. 법학에서는 그것을 '미필적 고의'라고 부른다. 그것이 그들이 놓친 생각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현실에서는 그런 논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일상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했다가 실패하면 강한 책임과 비난에 직면하지만, 처음부터 손조차 대지 않으면 책임 질 일도 비난 받을 일도 없다. 아마 그런 일상의 습관이 체화되어 트롤리 딜레마에서도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무언가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실패자를 지원하는 사회 시스템의 부재도 한몫 하는 듯하다. 그래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늘 가던 길에 안주하는 것에 익숙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굳이 시작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데에 길들어 있다.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은 없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또한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이다. 투자를 할 때든 직업의 영역에서든 사소한 일상에서든 저 마인드를 늘 염두에 둔다면 조금은 더 변화무쌍한 삶이, 다채로운 사회가 펼쳐지지 않을까.


Q. 평상시 시드의 절반 이상은 남겨둬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vs 시드를 다 쓰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현재 매수하는 종목에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불확실한 태도로 투자에 임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정말 확신한다면 투자금을 다 베팅할 수 있어야 한다. 애매한 태도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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