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형 vs 스페셜형
나는 특별히 잘하는 한 가지가 없다. 어쩌다 이런 어정쩡한 인간이 되어버렸나. 애석하고 안타깝다. 앞으로도 계속 어정쩡한 인간인 채 살다가 죽어도 괜찮을까 생각하면 막막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특정한 한 가지 주제나 분야를 냅다 판 적은 없다. 두루두루 고만고만 읽어왔다.
나의 이러한 한계는 스피노자의 탓이라고 방어하고 싶다. "깊게 파려면 우선 넓게 파라." 저 말을 한 사람이 스피노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정말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호사가들이 카더라 하면서 적었을 뿐이다. 실제 저 말을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긴 이제 와서 저 말을 스피노자가 했든 다른 누가 했든 무슨 상관이랴.
어쨌거나 어릴 때 나는 우주의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싶었다. 몇 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어느 학자가 피라미드인지 동굴인지 안에서 유물을 잘못 만지고는 우주의 모든 비밀과 신비를 다 알게 되면서 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나는 내 최종 꿈이 바로 저거다! 라고 생각했다. 백만, 억만장자보다도, 엄청난 명예나 권력보다도,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세상의 모든 지식이었다.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흥미가 많은 편이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소거됐다. 도무지 재미가 없는 분야는 목록에서 지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탈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우회로는 조금씩 찍먹이라도 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이러다 찍먹만 하다가 죽는 건 아닐까 슬슬 두렵다. 어느 한 분야를 심도 깊게 파야 할 때가 온 거 아닐까. 아니 이미 지난 건 아닐까, 두렵다.
얼마 전까지 같이 특목고를 준비한 중3 학생이 딱 나와 비슷한 성향이었다. 그 왜 있잖은가. 나랑 똑같은 단점을 가진 사람을 마주했을 때 특히 더 현기증 나는 거. 그 친구는 이미 다양한 탐구 활동과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고, 그것들을 확실히 자기 것으로 숙성시키기만 하면 문제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자꾸 뭔가 새로운 주제와 탐구를 찾는 데 더 열성이었다.
반대로, 기존에 해놓은 활동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기존 것을 확실히 아는 것도 아니었다. 물어보면 어물쩍 넘어가거나 얼버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략적인 틀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완벽하게 그 원리나 이론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부모님도, 이제 새로운 탐구를 탐색하는 활동은 그만하고 해놓은 것의 완성도를 높이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차트를 볼 때 내가 딱 그 학생 같다. 욕심이 너무 많다. 다양한 패턴 중 어느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하나의 패턴을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익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그러기도 전에 나는 다른 패턴, 그 다음에 또 다른 패턴으로 넘어갔다. 배울 때도 그랬고 실전에서도 그랬다.
아예 처음부터 안 봤다면 모를까 봐버렸다면, 혹시 이 종목이 조만간 날아가버릴지도 몰라,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매일 이렇게나 많은 종목들이 날아오르는데, 한 가지 패턴에만 집착하다간 많은 종목들을 놓치게 될 거라는 염려 탓이다. 하지만 그랬다가 결국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 잡은 날이 어언 4년이다.
그래서 아직도 특별히 자신 있는 패턴은 없다. 그냥 이것저것 잡다하게 보고 있다. 진짜 맛집은 단일 메뉴라는데. 나는 과연 차트 맛집 사장이 될 수 있을까. 다만 요즘은 딱 2가지 패턴에만 집중해야지, 매 순간 의식적으로 자중하며 차트를 본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와중에도, 역시 이건 진짜 딱인데, 싶은 차트를 보면 거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여전히 마음은 오락가락이니 역시 천성은 바꾸기 쉽지 않은 듯하다. 여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마음도 갈대와 같은가 보다.
Q. 다양하게 다 잘 아는 밸런스형 인간.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다. 그러니 못하는 것을 먼저 보완하자. vs 한 가지 능력에 특출난 스페셜형 인간. 하나를 완벽하게 마스터하면 다른 것들은 저절로 꿰뚫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못하는 것은 내버려두고 잘하는 것을 더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