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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n 14. 2018

1-14. 근친은 왜 나빠?

근친에 대한 유전학적 오해와 진실

다윈주의와 관련한 또 다른 간접적 오해가 있다. 바로 친족들끼리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열등해진다는 편견이다. 실제로 다윈은 외사촌과 결혼하여 열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근친 사이에 낳은지라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건지 몇 명의 자녀가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사망했다. 특히 가장 사랑하는 딸이 죽었을 때 다윈은 진지하게 외사촌과의 결혼을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학교 생물 시간에서도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지 않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근친 사이에 나온 자손은 희귀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다고 말이다. 물론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근친끼리는 유전적으로 결합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결합이며 그래서 유전적으로 오류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없었던 질병이나 장애가 생긴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극단적 예로, 형제끼리 성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불쑥 기형아가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유성생식의 기원과 특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간략히 살펴보자. 원래 태초의 생명체는 무성생식만 했다. 박테리아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된다. 무성생식은 가장 효율적인 번식법이지만 질적인 문제가 있다. 부모의 유전자와 자식의 유전자가 거의 100% 동일하다(염색체 복사 과정에서 오류가 나면 유전자 서열이 달라지는데 그럴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만큼 낮다). 부모의 장점을 물려받을 수도 있지만 단점 또한 100% 물려받게 된다. 이래가지고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도래하는 천적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없다.


그래서 나타난 형질이 유성생식이다. 아빠에게 50% 엄마에게 50%씩 유전자를 물려받아 완전히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아빠 엄마에게 어떤 유전자를 받을지는 완전히 확률적인 랜덤 게임이기 때문에, 좋은 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나쁜 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쁜 유전자를 몰빵으로 받은 개체는 오랜 자연의 시간 속에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근친 문제로 돌아오자. 중세-근세의 귀족들이 계속 근친끼리만 결혼해서 허약해진 이유는 물론 과학적으로 타당한 결과다. 애초에 유성생식의 특성 중 하나가, 나쁜 유전자 솎아내기였음을 기억하자. 그러려면 우리 가문이 가진 유전자 말고 외부의 다른 유전자 풀을 유입받아야 솎아질 확률이 커진다. 그런데 나쁜 유전자 덩어리를 가진 같은 가문의 아빠 엄마가 그 유전자를 자손에게 그대로 물려줄 테니 당연히 근친의 경우가 나쁜 유전자를 물려줄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근친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병에 잘 걸리고 건강이 나빠지는 이유다.


다윈이 가진 신경증과 위장병 등이 과연 가문에서 내려온 유전병인지, 시대가 그에게 끼친 사회적 산물인지는 모르겠으나(나는 후자라 생각하지만), 아마도 다윈은 그러한 자신의 병약함이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질까봐 걱정이 컸던 것 같다. 그 또한 다윈의 기질에 의한 것이었으리라. 더불어 다윈의 자식이 어린 시절 병으로 죽은 것을 단순히 유전적 영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의문이다. 위생과 건강도 시대적 문제와 외부 환경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첫 챕터는 이쯤에서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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