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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Feb 14. 2019

3-12. 그것은 마르크스의 잘못이 아닙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실패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자본주의 사회는 단일한 인간들의 집합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언급했다.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려면 자본의 순환을 통한 이윤 창출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이윤 창출의 비밀이란 곧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다시 맨 처음에 언급한 국가 얘기로 돌아가자.


‘자본주의 사회(=근대국가)’가 유지되려면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필수다. 그런데 그 사실을 노동자들이 알아챈다면, 혹은 그것이 부당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국가는 현 체제가 윤리적으로도 정당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 사회의 법적·제도적 시스템은 현재의 착취 구조를 인정한다는(혹은 그것이 당위적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국가관이다.


물론 이는 마르크스가 사고실험이 아니라 역사적 통찰을 통해 얻은 결과다. 애초에 중세의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고 근대국가가 세워지기 위해 앞장선 이들은 왕과 결탁한 상인 세력이었다. 영주-귀족의 커넥션을 폭파하기 위해 자산가들은 왕에게 부를 지원하고 왕은 자산가들에게 법적 안정권을 부여한다. 왕-자본가 커넥션의 탄생. 그것이 절대왕정국가의 탄생 배경이다. 그런데 왕의 폭주를 견제한 자본가·상인 세력은 왕을 배신하고 그를 처단한다.


그 과정이 영국에서는 명예 혁명이라는 형태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스페인 등의 부흥과 몰락 또한 동일한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는 태생부터 자본가의,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를 위한 국가였다.(물론 그러한 해석은 마르크스의 관점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염두에 두기 바란다.)


그러므로 홉스의 국가론은 마르크스가 봤을 때 노동자를 제외한, 자본가의 관점에만 입각한 보수적인 생각으로 비쳤을 터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홉스를 비롯한 칸트에게서 중요한 통찰을 배다. 홉스와 칸트를 차례로 소환해 보자.


홉스에 의하면 개인 대 개인의 다툼을 막기 위해 상위 단계의 존재인 국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순환 반복된다.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을 막을 그 위의 상위 레벨이 또 필요하다. 모든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의 국가’ 말이다. 이 대목에서 홉스는 그러한 합의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일축한다.


칸트는 홉스가 생각을 멈춘 지점에서 논의를 이어간다. 현재 세계가 불안정한 이유가 바로 국가 간 전쟁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세계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개별 국가를 통합하는 세계 유일의 통합 국가를 설정하는 것이다. 지구가 하나의 국가가 된다면, 그 국가의 구성원인 개인들의 다툼만 해결하면 그만이고, 더 이상 국가 간의 갈등은 사라질 것이니 자연스레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 칸트는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종말과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예측할 때 마르크스는 칸트의 생각을 차용한다. 마르크스가 살아 있을 때 이미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였다. 반면 아시아 및 아프리카를 비롯한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아직 자본주의가 정착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개별 국가 하나만 공산주의 사회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자본주의가 종결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변화’를 과학적인 인과관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동시에 붕괴되고 전 지구가 하나의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것. 그것이 마르크스가 인과적으로 예측한 공산주의 혁명이다. 거듭 말하지만 자본주의가 최상으로 성장하여 이윤율이 0으로 수렴하는 순간이 와야 자본가의 몰락과 생산 수단의 동등한 분배가 가능하다. 자본주의를 건너뛰고 바로 공산주의로 이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치 얼음이 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수증기가 될 수 없듯 말이다.


이것을 오해한 사람이 블라디미르 레닌이다. 우리가 아는 러시아 혁명의 주인공 레닌 말이다. 그는 자신의 국가를 인위적으로 공산주의로 탈바꿈시킨 다음 주변국들도 차례차례 공산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그것이 선진 사회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사실 판단을 가치 판단으로 오독한 것이다. 이미 지난 세기의 역사가 증명했듯 나머지 모든 국가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인데, 특정 국가 하나만 인공적으로 공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련의 몰락이 곧 마르크스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레닌의 잘못이지, 마르크스의 실책은 아니다. 마르크스를 오독하고 독단적으로 해석한 어느 정치가의 망상의 끝일 뿐이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몰락 시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몰락하려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동일한 수준으로 성공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이 생각을 물려받은 이들이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나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이다. 그들은 아직 자본주의로 이행하지 못한 유럽 이외의 지역을 자본주의로 변화시키는 과정으로서 유럽의 제국주의를 이해했다(그것은 분석일 뿐 그들이 유럽 제국주의를 옹호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것은, 먼저 자본주의를 정착한 국가가 다른 지역의 사회적 요소를 자신들 국가의 경제 시스템에 포섭하고 생산 요소로 환원하여 상품화하는 과정이, 자본주의 확산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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