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열하기
너는 뭐 좋아해?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하지. 보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어렴풋이 좋은 느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진짜'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거 아닐까. 만약 음식이라면, 그 음식을 한 달 내도록 점심으로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좋아해야 하고,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면 콘서트는 물론이고 그가 출연한 모든 영상을 다 찾아서 볼 정도로 좋아해야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치면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저 좋음의 범주에 포함되는 정도뿐인 것 같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야,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지치고 고된 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면 손쉽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내가 조금은 쉬워질 것 같다.
1. 혼자 있는 시간
사람들이랑 반갑게 떠들며 어울리는 시간도 좋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좋다. 인간이 하루를 정상적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토요일이 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가 살았던 흔적이 집에 남는다. 흰 티에 묻은 짬뽕 국물처럼 여기저기... 생활 폐기물이 가득히 쌓이고, 미처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물건들이 뒤죽박죽 뭉쳐져 있다. 그럼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것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데 시간을 쓴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또다시 세탁기를 돌린다. 방을 닦고, 이불에 먼지를 털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작은 내 방에 조금씩 정이 붙는다. 땀냄새나는 옷더미가 세탁기에서 나와 건조대에 반듯하게 걸리고, 집안에 섬유유연제 향기로 가득해질 때 행복하다.
평일 저녁 혼자 있는 시간도 좋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빨라야 8시인데 그럼 이미 해가 다 져서 깜깜한 밤이 된다. 보조등 하나를 켜고, 책상 앞 스탠드 조명을 하나 켠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서 음악을 들으며 씻고 누워있다 보면 10시, 11시가 된다. 노란 조명 빛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두워서 가끔 눈이 침침해지만. 그 노란 조명은 내 마음이 집에 돌아왔다는 안정감의 신호이다. 이 역시 큰 행복감을 준다.
2. 맛있는 빵
빵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빵을 더 많이 먹기 위해서 밥을 안 먹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빵을 좋아한다고 하기엔 식빵이나 아무것도 발리지 않은 스콘은 별로다. 캐챱맛이 나는 소시지 빵도 그다지이다.
터질 듯 무엇인가 내용물이 들어간 크림빵이 좋다. 말차맛, 초코맛, 얼그레이, 황치즈 맛 등으로 크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꾸덕한 버터바도 좋다. 잇자국을 선명하게 남기는 질감이 좋고 버터의 꾸덕한 맛도 좋다. 크림치즈 케이크도 좋다. 꾸덕한 식감, 은은한 단맛에 약간의 짭짤한 맛이 좋다. 맛 좋은 케이크와 시원한 커피 한잔의 조합은 정말 행복하다. 소금빵도 좋다. 커다란 버터 동굴이 생긴 소금빵에 빠삭하게 한입 먹었을 때 입에 버터맛이 퍼지는 것도 좋다. 특히 소금빵이랑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에 가면 소금빵 하나랑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같이 주문해서 소금빵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서 먹는다. 단짠단짠의 조합이 참 좋다.
3. 그러니까..
3시 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 딱,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참 더 많이 남았다. 내가 상상했던 코디가 내 체형에 딱 들어맞게 옷 입는 날도 좋고 노이즈 캔슬링이 완벽한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달리기도 좋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헤엄치는 순간도 좋다. 엄마랑 좋은 분위기의 카페에 가서 빵이랑 커피를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것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이렇게 많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지치고 시도하다가 풀썩 주저앉아 버려도 잠깐만 떠올려보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든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리고 나는 처갓집 슈프림 양념치킨을 참 좋아하는데 오늘은 어제 저녁 나 자신과 약속한 치킨을 먹는 날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쓰고 집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