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춘기 vs 갱년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얘기하고 있네!”
확실히 온몸에 교양을 두른 선배 입에서 나올 만한 언사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집 아이들은 객관적으로 부러움을 살만큼 잘 자랐다. 선배가 평범한 사춘기의 기행을 이해할 리가 없을 텐데….
“김 대리, 욕이라도 안 하면 진짜 돌아버려.”
나는 처음으로 선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자랑스러운 쌍둥이 남매의 비화를 듣게 되었다.
선배는 늦은 나이에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얻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돌변한 것은 중2 여름방학 때였다. 다정다감했던 아들은 묵언수행에 들었고, 엄마 껌딱지였던 딸은 걸핏하면 짜증을 내고 원망의 눈물을 쏟았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한시라도 놓지 않고 엄마의 말쯤은 가뿐히 무시했다. 선배는 천불이 나서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도 땀을 뻘뻘 흘렸다. 급기야 선배는 스마트폰 금지령을 내렸다. 아이들은 엄마를 악마 취급했고 싸움을 점점 치열해져서 머리끝까지 열이 오른 선배는 외출할 때면 스마트폰에 TV 리모컨에 컴퓨터 코드 연결선까지 다 뽑아 들고나갔다. 사춘기 대 갱년기의 설욕전이었다.
“사춘기가 뭔 벼슬이야? 이쪽도 이판사판이야. 마음 굳게 먹어”
“선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욕하고. 호르몬 약 먹고, 애들 크고, 그럼 돼. 다른 방법 없어.”
수족관 안에서 말미잘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엄마, 여기 형아 있어요."
막둥이는 두 팔을 높이 들고 흔들며 말미잘 흉내를 냈다.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회사에서 가족의 날 기념행사로 롯데 타워 아쿠아리움 입장권이 나왔다. 오랜만에 서울 구경이라고 온 가족이 총출동하려는데 또 ‘문제의 녀석’이 문제였다.
“어머니, 저는 집에서 시험공부하겠습니다.”
“네가 어머니라고 부를 때 제일 불안한 거 알지?”
“무슨 말씀이세요?”
“몰라서 물어? 공부는 무슨 공부야? 그냥 같이 가.”
“엄마, 시험이 2주도 안 남았어요. 공부해야죠.”
“컴퓨터 안돼.”
“아유, 당연히 노트 필기하죠.”
“넷플릭스 비밀번호 걸어야지.”
“아유, 안 봅니다.”
“그래? 못 믿겠다. 리모컨 가져갈래.”
“그러세요.”
“너 진짜지? 공부하는 거?.”
“엄마, 제발 믿어요.”
말미잘 동영상을 확인한 녀석은 단톡방에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삐진 걸까? 나는 괜히 공부 잘하고 있는 애 기분을 망친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초조해졌다. 나한테 남편의 과한 농담을 험담할 자격이 있던가? 딸한테 모질만큼 독설을 날리는 친정엄마를 비난할 자격이 있던가? 말미잘 동영상 옆 사라진 숫자 1을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내 자괴감은 커져만 갔다. 아무 잘못 없이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조롱하다니! 좋은 엄마 자격시험이 있다면 나는 보나, 마나 실격이었다. 나는 집에 가는 길에 단골 빵집에 들러 녀석이 좋아하는 지독히 달고 시커먼 초콜릿케이크를 샀다.
“이 새끼!”
나는 흠칫 놀라 선비 얼굴을 한 막둥이 눈치를 살피며 심호흡 후 소리쳤다.
“이 말미잘! 네가 인간이야?”
“죄송해요.”
“죄송한 인간이 동생 학습 태블릿에 게임을 깔아?”
“우와 그게 돼? 애들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진짜 태블릿이네.”
초딩 입맛인 남편이 입안 가득 초콜릿케이크를 우물거리며 신나게 녀석에게 물었다.
“안될 줄 알았는데 그게 깔리더라고요.”
“뭐? 이 새ㄲ…. 말미잘!!! 먹지 마!!!”
나는 녀석 앞에 있는 케이크 접시를 거칠게 낚아채 막둥이 앞에 놓았다. 웬일인지 막둥이는 좋아하는 초콜릿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았다. 늦둥이로 태어난 큰형들과 함께 자라며 이래저래 치이다 보니 막둥이는 먹는 것 포함 자신의 몫을 챙기는데 민감한 아이였다. 막둥이는 자신의 학습 태블릿을 손에 꼭 쥐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춘기 형아 진짜 싫어! 이 말미잘아!!!”
막둥이는 서러운지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