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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맥주는 추억을 타고 흐른다.

별별 사람들 13화 마로니에 공원의 연인들

by 매콤한 사탕

딱히 맥주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시기만큼은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봄밤의 맥주엔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걸까?

끌리는 편의점의 문을 저항 없이 끌어당겼다.


이런, 가볍게 한 캔만 사자는 결심은 애초에 안 하느니만 못하다.

번들할인행사 맥주 네 캔을 한 아름 사들고 나와 반듯한 서류가방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이런, 가방이 형편없이 못생겨졌다.

그렇다면 다 마셔서 다시 예쁘게 만들어줘야지.


맥주를 마시며 무작정 걷다 보니 익숙한 장소였다.

한밤의 마로니에 공원

모든 것이 변하고 달라졌지만

마로니에 공원은 아직 이곳에 있다.

사실은 마로니에 공원도 변했지만...



그 날밤, 마로니에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해의 가장 추운 날이었다.


우리는 불 켜진 가로등 옆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아리는 귀여운 빨간 더플코트에 모직치마 차림으로 덜덜 떨며 말했다.


"멀리서 볼 땐 노란 가로등 불빛이 꽤 따뜻해 보였는데 춥네."

"당연하지, 무슨 가로등이 난로도 아니고. 가자 어서!"

"안 돼. 너 대답하기 전까진"

"뭘?"


아리가 내게 팔짱을 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나랑 사귀자. 내가 잘해줄게."


가로등이 난로로 변했나? 뜨거운 기운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넌 여자애가 무슨... 고백을 이렇게 해."

"왜 여자는 고백하면 안 돼?"

"안 돼. 저기, 그러니까, 난 누군가 만날 수 있는 입장이 아냐. 지금도 앞으로도."

"바보!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이런 기회가 뭐 흔한 줄 알아?"


토라진 아리가 팔짱을 빼려다 살며시 다시 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물리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볼멘소리를 말했다.


"헤어질 건데 굳이 왜 사귀냐?"

"내 말이! 그러니까 우린 안 헤어지면 되잖아. 나랑 사귀자~ 응? 응?"


애원하는 아리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더는 그녀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 사귀자. 이제 됐지?"


아리는 눈을 반짝이며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추운지 볼이 아로아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가자. 너 감기 걸리겠어."


일어나 가려는데 아리가 팔을 끌어당겼다.


"왜?"

"우리 키스해. 사귀는 기념으로다가"

"진짜 너! 넌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나는 당황해 횡설수설했다. 아리가 모른 척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가만히 조심스레 다가가 살짝 키스했다. 잠시 후 마주한 아리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나 미쳤나 봐."

"왜?"

"네가 너무 예뻐 보여."



봄밤의 맥주엔 특별한 레시피가 따로 있나?

마로니에 공원은 아직 이곳에 있다.


결국, 아리와 나는 헤어졌다.


하지만,

마로니에 공원은 아직 이곳에 있고,

추억은 여전히 아름답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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